저축은행 '88클럽' 得인가 毒인가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10.02.0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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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저축은행 살길은...]<1>대형사와 중소형사 구분 잣대는

금융당국은 올 상반기 최우선 과제로 '저축은행 감독체계 개선'을 내세웠다. 대형저축은행들의 덩치는 지방은행을 능가하는데 감독체계는 옛 '신용금고' 시절에 머물고 있어 효율적인 감독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낡은 규제 때문에 업계에 대한 감독이 허술했고, 이 때문에 대형저축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대출과 같은 고수익·고위험 투자자산 비중을 늘리는 것을 제때 통제하지 못했다는 게 당국의 인식이다.



◇대형저축은행 규제 강화, 왜?=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선 최근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을 대형 저축은행과 중소형 저축은행으로 이원화하는 내용의 감독기준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연구기관과 저축은행 업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금융당국은 TF 출범 이후 대형저축은행의 경우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5% 이상인 건전성 기준을 시중은행 수준인 8% 이상으로 상향조정하고,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당국에서 저축은행들이 급격히 대형화되며, 일부 대형저축은행의 경우 수익구조와 자산운용 방식이 '서민금융기관'이라고 하기엔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형저축은행들의 자산운용현황을 살펴보면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PF 등 고수익·고위험 투자자산 규모가 상당하다. 일례로 자산규모가 7조원이 넘는 A은행은 지난해 9월말 현재 유가증권 투자잔액이 5571억원이나 된다. 전체 예수금(각종 예금과 적금 잔액을 합친 액수)의 20.1%에 이르는 규모다. B은행도 4823억원으로 예수금 대비 21.55%를 기록했다. 고객 예·적금의 약 20%를 손실위험이 높은 유가증권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저축은행의 PF 대출 잔액도 각각 2조7596억원과, 4542억원으로 유가증권 투자액과 비슷하거나 이를 크게 웃돈다. 문제는 이들 대형저축은행 2곳의 자산규모가 전체 105개 저축은행 전체 자산의 약 25%에 이른다는 점. 금융당국이 대형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지 않고선 업계 전체의 자산부실화를 막을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유다.


지방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다수 저축은행은 지역민과 밀착한 커뮤니티뱅크 역할을 수행하며 서민금융에 일조해 왔다"며 "그동안 무리한 투자로 물의를 일으킨 대형저축은행과 중소형 저축은행을 구분해 감독을 달리하겠다는 당국의 발표는 환영할만 하다"고 평가했다.

◇대형저축은행 기준 어떻게=저축은행 TF에선 현재 규제강화 대상인 대형저축은행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당국에선 자산 1조원을 대형저축은행의 기준으로 삼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 1조원이 넘는 저축은행의 수는 27개. 전체 105개의 25.7%여서 대형사 기준으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저축은행의 자산규모는 70%를 넘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축은행중앙회 고위관계자는 "자산 1조원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대형저축은행에 대한 규제가 업계 전체에 대한 규제로 확대될 수 있다"며 "자산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형저축은행 그룹의 경우 계열사 전체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지, 개별사로 달리 적용할지도 민감한 이슈다. 대형저축은행들은 그간 활발한 인수·합병 활동으로 여러 계열 저축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한국저축은행의 경우 경기·영남·진흥저축은행을, 부산저축은행은 부산2·중앙부산·대전·전주저축은행을 계열저축은행으로 거느리는 식이다.

대형저축은행 임원은 "대형저축은행그룹 내 계열사를 모두 대형저축은행으로 분류할 경우 지방소재 계열저축은행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지주사 역할을 하는 저축은행에는 강화된 규제를 적용하되, 계열 지방저축은행은 중소형저축은행으로 분류해 지역 내 다른 저축은행과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를 이원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TF에선 자산규모와 아울러 건전성 지표를 규제 대상 대형저축은행을 가리는 주요 지표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우수한 건전성을 기록한 업체에 한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업무 범위를 확대해주는 방안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건전성 지표가 주요 기준이 될 경우 소비자 편의가 저하되고, 저축은행 간 고객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한다. 각 저축은행별로 취급 업무에 차이가 있을 경우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건전성 지표에 따라 취급업무가 다르면 고객은 저축은행을 방문하기 전 이를 미리 알아봐야 하는 불편함이 따를 것"이라며 "취급업무가 제한된 곳은 위험한 저축은행으로 소문이 나 고객 이탈이 가속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자산 3조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자산규모가 3조원을 넘는 저축은행은 6곳으로 이들 저축은행 자산이 전체 업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78%다. 이 경우 대형저축은행의 서민금융 강화 유도라는 당국의 TF 설립 취지에도 대체로 부합할 뿐더러, 규제 강화로 저축은행 업계가 크게 위축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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