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백지동의서' 공포 확산

머니투데이 서동욱 기자 2010.01.3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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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설립이후 후속절차 모두 효력 잃어, 이주비놓고 시공사와 분쟁 불가피

전국 1500여곳의 재개발·재건축사업장에 별도의 내용없이 조합설립 과정에서 조합원의 이름과 도장만 찍어준 이른바 '백지동의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월29일 백지동의서가 무효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될 경우 이후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후속 절차가 모두 효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백지동의서를 받은 사업장이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 철거나 이주했을 경우 이미 지급된 이주비를 비롯해 사업 진행 과정에서 사용된 사업비를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의 분쟁도 야기되는 등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현재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설립돼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진행되는 구역은 무려 614곳으로, 전국적으로는 1500여곳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 사업장 가운데 대다수가 조합설립인가를 위해 백지동의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지동의서는 건축물의 설계 개요와 개략적인 건축물 철거·신축 비용은 기재하지 않은 채 조합원의 이름과 도장만 찍은 조합설립동의서다. 즉 조합설립인가를 위한 조합원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불법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같은 불법 위임장 형태의 동의서에 대해 사법부가 철퇴를 내린 셈이다.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될 경우 그만큼 사업추진 기간이 늘어나 사업지연이 불가피하다. 그나마 조합설립인가 직후인 사업장의 경우 낫다. 후속절차인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거나 동·호수 등을 지정하고 추가부담금 등을 결정하는 관리처분인가가 난 사업장의 경우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통상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 철거와 함께 이주 절차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시공업체는 조합을 대신해 이주비 등을 지급한다. 이주비는 사업장 규모나 위치 등에 따라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등 천차만별이다. 또 무이자나 유이자가 병행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되면 이후 절차도 효력을 잃게 돼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시공사의 지위 유지 문제가 발생한다. 시공사는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선정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공사가 지불한 이주비 처리 문제가 자연스럽게 불거진다.

상황에 따라 시공사가 바뀔 경우 이주비 반환 청구 소송과 같은 도미노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설령 시공사가 재선정돼 시공권을 유지하더라도 늘어진 사업기간 만큼 발생한 이자부분에 대한 처리도 논란거리다.

시공사와 조합, 인허가권자인 행정관청 등이 서로를 상대로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관련 소송에서 조합설립에 대해 무효 판정이 날 경우 기존 조합에서 행해진 사업행위가 모두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 사업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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