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 '김치 펀드'를 아십니까

오석태 SC제일은행 글로벌마켓총괄본부 상무 2010.01.26 09:35
글자크기
[폰테스] '김치 펀드'를 아십니까


금융 위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던 2008년 10월 어느 날의 일이다. 갑자기 태국 펀드매니저로부터 우리나라 국고채의 디폴트 가능성에 대해서 문의하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한국의 탄탄한 펀더멘털 및 재정 상태를 감안할 때 국고채 디폴트 가능성은 제로라고 바로 답해 주었다.

최근 태국에서는 한국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가 ‘김치 펀드’라고 불리우며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 ‘김치 펀드’의 규모는 현재 약 5천억 바트(약 17조 원)로, 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4 정도임을 감안할 때 60조원에 이르렀던 우리나라의 해외 펀드 열풍과 맞먹는다. 외국인 투자 비중이 주식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 채권 시장에서도 태국 투자자는 가장 돋보이는 ‘큰 손’이다.



‘김치 펀드’가 이렇게 인기를 얻은 비결은 무엇인가? 통화 스왑, 재정 거래 등 금융공학적인 설명을 잠시 접어두면, 결국 안전한 투자처로서의 한국에 대한 높은 신뢰도일 것이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일부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선진국에 가장 근접한 펀더멘털과 발전된 금융 시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믿음이 약간의 추가 수익과 합쳐져 한국 펀드 붐을 낳은 것이다.

‘김치 펀드’의 성공은 우리나라가 외화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외국인 자금의 한국 탈출이 두드러졌던 2008년 하반기 및 2009년 초에도 태국 자금은 거의 유출이 없었으며, 2009년 봄부터는 다시 국고채를 적극적으로 매입하였다. 결국 아시아 금융 시장의 숙원 사업인, 역내 채권 투자의 활성화를 통한 시장 안정을 실현한 좋은 예로 보여진다. ‘김치 펀드’의 성공 사례가 아시아 다른 나라에도 이어진다면 굳이 중앙은행간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와 같은 공조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태국 자금, 나아가 신흥 시장 자금의 한국 채권 시장 유입에 문제는 없는가? 기본적으로 한국은 태국보다 잘 사는 나라이다. 상대적인 개발 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자금 유입,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바로 ‘세계적 불균형’의 핵심 구조인 신흥시장국(아시아, 중동)에서 선진국(미국)으로의 자금 흐름이 태국과 한국 사이에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신흥시장국이 선진국에 수출해서 번 달러를 저축하여 선진국에 빌려 주고, 선진국은 그 돈을 가지고 신흥시장국 제품을 수입하면서 소비를 늘리는 거대한 ‘벤더 파이낸싱’ 구조가 태국과 한국 사이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통계를 보니 작년 태국과의 무역 수지는 13억 달러의 흑자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태국이 인기 최고의 관광지임을 생각해 볼 때 관광 관련 수지를 합하면 적자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작년 한 해 경상수지 흑자가 4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경제는 분명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과 다르다. 그러나, 해외 자본 유입이 지속된다면 한국도 경상수지 적자 기조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수출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지속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경상수지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나라가 외채를 늘리고 태국 자금까지 받아들였던 이유는 바로 해외 주식 투자를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도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차입하여 그 일부를 신흥시장국 주식 시장에 운용, 높은 수익을 올렸던 미국을 벤치마킹한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 성급한 해외 시장 진입으로 큰 손실을 보았으며, 결국 이 투자 손실이 펀드의 환헤지를 통해 환율 급등으로 이어졌다. 신중한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사례였다.

결국,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는 ‘김치 펀드’로 상징되는 안정적인 해외 자본 유입을 계속 향유하면서도 수출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잉여 자금을 해외 투자로 잘 운용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면서 ‘김치 펀드’ 열풍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금융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