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진화? 사채업자 등쳐먹는 어음발생사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10.01.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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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풍향계]전자어음법 시행 이후 할인물량 급감…다급한 사채업자 대상 사기

명동 사채시장에 회사채 할인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전자어음법 시행으로 사채시장에서 어음거래가 사실상 중단된데 따른 변화다. 자금줄이 끊긴 건설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채를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어음 대신 회사채 할인=지난주 명동에는 대형건설사인 A사의 회사채 10억원 어치에 대한 할인문의가 접수됐다. 어음 유통이 대부분인 사채시장에 대형사 회사채가 등장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 이는 지난해 11월 '전자어음법' 시행 이후 어음거래 물량이 급감한데 따른 결과라는 게 사채업자들의 설명이다.



전자어음법에 따라 자산 100억원 이상 기업이나 상장사 등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은 약속어음을 반드시 전자어음 형태로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어음은 발행과 유통과정이 전산으로 처리돼, 투명한 거래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채시장에선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실물거래가 가능한 회사채를 할인해서라도 급한 자금을 구하려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명동 사채시장 관계자는 "전자어음법이 중소기업과 건설사들의 자금줄을 옥죄고 있다"며 "앞으로 건설사 회사채가 명동 시장에서 유통되는 일이 더욱 빈번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사 하청업체들이 받는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사채시장에선 건설사들의 재무상황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 고액의 어음을 기피하는데, 건설사들은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고액의 어음을 끊어 하청업체에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채업자 대상 사기도 빈번=전자어음법 시행 이후 사채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기사건도 크게 늘었다는 전언이다. 할인영업을 할 '물건'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사채업자들의 다급한 심리를 이용한 사기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명동에선 얼마 전 2억원 어치 어음을 할인해 자금을 빌려간 업체가 만기가 다다르자 고의로 '피사취부도'를 내는 일이 발생했다. 피사취어음 부도는 어음발행자가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음금을 지급하지 못하겠다며, 거래은행에 어음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한 어음중개업자는 "이런 경우 사채업자와 발행회사 간 소송이 나는데 발행사실만 확실하면 사채업자가 돈을 받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금을 조달받고도 사채업자를 사기죄로 고발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상황을 우려한 업자들은 자주 거래하는 단골을 중심으로만 할인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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