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다는 'WWW' 장애인에겐 '철조망'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0.01.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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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어깨걸이 '포옹']<3>인터넷강국 한국의 웹접근성 주소는?

↑ 장애인용 보조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한국정보화진흥원↑ 장애인용 보조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한국정보화진흥원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월드 와이드 웹(www)의 아버지' 또는 'www의 창시자'로 불리는 팀 버너스 리(55)가 정의한 '웹'의 정의다.

자타공인의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총 인구 4850만명 중 3747만명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나라다.



2000년 1892만개이던 국내 인터넷 홈페이지 수는 2009년 7780만개로 4배 이상 늘었다.

인터넷 뱅킹 가입자 수는 중복사용자를 포함해 5300만명을 돌파했다. 인터넷 뱅킹을 통해 하루에 오가는 돈만 해도 33조원이 넘는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기업간 거래액도 지난해를 기준으로 12조원을 웃돈다.



이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돼 있는 가운데서도 장애인들은 웹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다. 팀 버너스 리가 꿈꿨던 것과 달리 현실의 웹 사이트는 장애인들이 넘기 힘든 장벽을 곳곳에 세워두고 있다.

◇장애인들만 느끼는 웹공간의 장벽들= 서울 제기동에 사는 이제승 씨(33·남)는 시각장애 1급, 즉 전맹(全盲)이다.

그래서 이 씨는 인터넷을 사용할 때마다 '스크린리더'라는 특수 프로그램에 의존한다. 컴퓨터 화면의 글씨를 음성화해서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탭(Tab)키를 여러 번 누르면 인터넷 화면의 링크선택 커서가 이동한다. 커서가 이동할 때마다 스크린리더는 해당 아이콘을 전자화된 음성을 통해 들려준다.

"새 창 열림" "이 페이지의 정보는 총 ○줄입니다", 2002년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온 이 씨가 인터넷 공간을 접하게 해주는 고마운 소리다.



이처럼 글자로 표시된 정보는 문제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이 씨도 몇몇 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난감할 때가 많다.

이 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할 때가 특히 고역이다. 키보드 보안을 위한 액티브 엑스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깔리는데 이 프로그램이 스크린리더와 종종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밀번호를 1234로 입력하더라도 보안기능 때문인지 스크린리더가 '0000'이라고 읽을 때가 있어요. 저처럼 인터넷을 오래 사용한 장애인이라면 몰라도 대개의 경우 '내가 잘못 입력했나' 싶어 수차 비밀번호를 입력하느라 애를 먹어야 하죠."



5000만명 이상이 이용한다는 인터넷뱅킹도 이 씨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서 로그인을 해야 하는데 마우스를 이용할 수 없는 그는 은행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웹 개발자들이 웹 페이지의 링크를 만들 때 '게시판' '자료실' 등 형태로 라벨을 달아주기만 하면 저 같은 시각장애인도 무리 없이 정보를 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개발자들이 사이트 개발과정의 편의만 생각해서 '01' '02'라고 라벨을 붙일 경우 내가 들을 수 있는 건 그저 '01'이라는 숫자일 뿐 그게 게시판인지 자료실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웹 접근성 마크받은 곳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지난 2008년부터 시행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은 "공공기관과 기업, 교육·문화기관, 병원이 생산·배포하는 전자정보 및 비전자정보에 대하여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수화,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웹접근성 캠페인 홈페이지 중 발췌 ⓒ한국정보화진흥원↑ 웹접근성 캠페인 홈페이지 중 발췌 ⓒ한국정보화진흥원
2015년부터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 외의 모든 법인 사이트는 장애인 차별금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2015년 이후에는 장애인이 이를 통과하지 못한 사이트에 대해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이트 운영자는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주관 하에 '장애인 웹접근성 품질마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장차법이 시행되기 1년전부터 정보화진흥원은 웹접근성 품질마크를 부여해왔다. 지금까지 153개 홈페이지가 마크를 받았다.

하지만 웹접근성 품질마크를 받은 곳이라도 장애인들이 불편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제승 씨는 "품질마크를 받은 곳은 그나마 인터넷 쇼핑몰이나 은행 같은 곳보다 낫지만 세부적으로 정보를 찾다보면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곳이 많다"며 "설마 장애인이 여기까지 와서 정보를 찾겠냐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홍경순 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사업부 부장은 "어떤 사이트가 웹접근성 품질마크를 받았다고 해서 차별기준을 통과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현재 품질마크는 해당 사이트가 다른 일반 사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애인의 웹접근성을 보장했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처한 불편함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웹접근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웹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장애인의 수는 커녕, 어떤 형태의 장벽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다.



홍경순 부장은 "중증 장애인이라도 하지(하체) 장애만 있는 사람은 웹 사용이 무리가 없다"며 "웹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장애인의 수를 조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 시각장애인용 키보드인 '킹 키보드' ⓒ한국정보화진흥원↑ 시각장애인용 키보드인 '킹 키보드' ⓒ한국정보화진흥원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장애인 정보시대'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김창복 씨(지체장애 1급)는 "현재의 웹접근성 사업으로 어떤 유형의 장애인들이 어떻게 혜택을 볼 수 있는지가 명확치 않다"며 "이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홈페이지 운영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 웹개발사 관계자도 "장차법 시행 이후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웹 개선관련 컨설팅 시장이 생길 수는 있다"며 "어떻게 고쳐야 할 지가 명확치 않게 되면 웹 운영자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규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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