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 행장과 세종시…정치와 경제의 샅바싸움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10.01.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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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야놀자]세종시 논란은 정치·경제논리의 상징적인 충돌 현상

강정원 행장과 세종시…정치와 경제의 샅바싸움


#"강정원 국민은행장,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 당국의 압력행사는 시장 스타(전문가)에 대한 정치·행정권력의 견제로 볼 수 있다. 떠오르는 신흥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옛 권력의 횡포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가 한국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충돌 양상을 우려하며 던진 얘기다. 경제발전과 자본·금융시장 성숙에 따라 권력의 축이 정치에서 경제 쪽으로 옮겨지는 가운데 커다란 충돌양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치자 세계 자본 선진국에서 금융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물 흐르듯 수익을 좇아가는 자본에는 윤리·가치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무모한 자본·신용확장, 과도한 레버리지로 실물과 떨어진 채 무한 증식하는 가상현실에 갇힌 글로벌 금융회사들…. 경제논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현상은 곧 정치논리의 강화로 이어졌다.



여러 차례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이며 입지가 조금씩 줄어든 한국의 금융당국도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적게 입고, 게다가 위기를 가장 빨리 벗어난 것은 이미 작동하고 있던 금융당국의 '합리적인 규제와 제재'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세종시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첨예한 대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세종시 원안에 대해 여러 차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는 정치논리에 따른 것으로, 당시로선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민심(표심)을 얻어야 하는 선거전에서는 으레 경제논리 대신 정치논리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경제논리는 성격상 직·간접적인 이해당사자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기 마련이다. 깔끔한 정답을 찾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세종시처럼 애초 정치적 논리에 따라 진행된 대규모 국책사업일 경우 더욱 그렇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CEO(최고경영자)형 지도자'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중도실용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 대통령이 아닌 경제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한국 사회를 가르고 있는 지역분할 정치, 작은 이익을 앞세우는 소아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에서조차 "대통령이 정치, 국회, 여당을 무시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심지어 "역대 가장 비정치적인 대통령, 정치 아마추어 대통령"이란 비판마저 제기됐지만 묵묵히 갈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길은 지금 세종시 앞에서 멈췄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 건설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강력한 정치논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행정비효율 수정, 자족능력 강화라는 경제논리는 약속이행이란 정치논리의 파상공격을 받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충돌은 어제 오늘에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강력한 정치권력은 경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경제발전은 강력한 정치 리더십의 목표이자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폭발적인 경제발전 속에서 시장의 이해관계와 목소리가 커졌고 차츰 정치논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거세졌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정치논리가 새삼 강화됐지만 자신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경제논리의 도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세종시 논란은 정치·경제 등 여러 부문의 이해가 얽혀 있는 복합 방정식이다. 이중 정치·경제논리의 충돌이 갈등의 주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안이 정치·경제논리의 충돌일 수밖에 없는 세종시 문제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도 이같은 충돌이 반복해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세종시를 놓고 국회 안팎에서는 여러 질문이 나오고 있지만 속시원한 답은 없다. "대통령은 왜 굳이 가시밭길을 택했을까", "세종시는 판도라의 상자이기 때문에 봉인을 뜯을 필요가 없었다"…. 세종시 논란으로 대표되는 정치·경제논리의 충돌과 이에 대한 해법은 한국 사회가 2010년에 받아 든 최대 과제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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