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정몽구 회장 너털웃음의 이유

머니투데이 장웅조 기자 2010.01.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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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연→냉연→車 연쇄 생산라인 확보…토요타도 못한 일

↑5일 당진 일관제철소 제1고로 화입식에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화입을 하고 있다. <br>
↑5일 당진 일관제철소 제1고로 화입식에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화입을 하고 있다.


"오늘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추운데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평소 취재진에 대해 말수가 적기로 유명한 정 회장은 5일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에서 현대제철 제1고로 화입식을 마치고 기자와 만나 이례적으로 소감을 밝혔다.

정 회장은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도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현장기자가 '어린 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이라 표현한 그의 웃음은, 고로에 횃불을 집어넣어 불을 당기고, 팡파레가 울려 퍼지고, 기념촬영을 하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올해로 73세를 맞은 '회장님'의 표정은 이날 매우 솔직해 보였다.



정 회장은 그간 고로 건설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1주일에 2~3번이나 헬리콥터를 타고 당진공장으로 날아가 임직원들을 격려했고, 현대·기아차나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직원들에게도 '직접 가서 보고 자부심을 느끼라'며 건설현장 방문을 지시했다. 그 결과 당진공장은 현대차 그룹에서 오너와 임직원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가 됐다. 이날도 정 회장의 특별지시로 전무급 이상의 계열사 임원들은 대부분 화입식에 참석, 영하 7도의 날씨를 견디며 원료 저장소 등의 공장시설을 걸어서 견학했다.

현대제철은 연매출 10조 원 가량의 기업으로, 현대차 그룹에서 현대모비스의 뒤를 이어 매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룹의 간판이라고 부르긴 어렵다. 그럼에도 오너가 이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고로 가동이 자동차 산업에서의 '수직계열화' 완성을 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제철의 수익성 제고 차원을 넘어서는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이 고로에서 열연강판을 생산하게 되면, 이를 현대하이스코에 공급해 냉연강판으로 가공하고, 이를 현대·기아차에 넘겨 자동차용 강판으로 사용케 하는 연쇄 생산라인이 확보된다. 현대차 생산 과정이 외부환경으로부터 덜 휘둘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강판 가격이 얼마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원가를 그룹 내에서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기업집단이 철강과 자동차 회사를 동시에 거느리고 있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현대자동차가 유일하다. 이는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토요타조차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로에서 철광석으로 생산한 열연강판을 올해부터 현대·기아차의 국내외 공장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양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작년에도 고철로 만든 철판을 70만 톤 정도 공급했으니 올해 물량은 그보다 많을 전망이다. 고철보다 철광석으로 자동차용 강판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더 쉽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가 전세계에 판매한 차량은 464만대. 차량 1대 생산에 철 1 톤가량이 쓰인다는 것이 통설이니, 현대제철은 계열사만으로 연간 464만 톤 정도의 잠재 수요를 확보한 셈이다. 이는 현대제철이 앞으로 생산하겠다고 밝힌 열연강판의 양(650만 톤)의 3분의2를 넘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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