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토빈세 도입 논의의 의의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2010.01.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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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토빈세 도입 논의의 의의


1972년 예일대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은 프린스턴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단기성 외환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름을 따서 토빈세(Tobin Tax)라고 불려지게 된 이 금융거래세는 이후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토빈의 의도는,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과도한 효율성을 보여주는 국제금융시장이라는 바퀴에 모래를 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높으며 이는 주로 단기투기적인 자금에 의해 야기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토빈세 도입을 통한 거래비용 증가가 투기거래를 억제할 것이며, 이는 투자기간의 장기화를 유도함으로써 결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축소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또 국가의 경제정책이 국제외환시장의 변동성이나 국가간 자본이동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짐으로써 정책의 유효성과 자율성이 제고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토빈의 주장은 스티글리츠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의 지지를 받았지만 많은 비판을 피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세금의 부과로 인해 거래가 줄어들면 시장의 깊이(depth)와 유동성이 축소되어 변동성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또 토빈의 생각과는 달리 투기거래자는 일종의 마켓메이커 혹은 조정자 역할을 함으로써 시장의 변동성을 증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안정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외에 2002년 OECD의 한 실증연구에서는 토빈의 주장과는 달리 거래세의 부과가 시장의 변동성을 감소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들 역시 완벽하지는 못했으며 경제학적 논쟁이 언제나 그렇듯이 토빈세 논의 또한 뚜렷한 컨센서스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금융자유화의 확산과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논쟁의 주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그 토빈세가 최근 국제금융가에서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으로서이다. 2009년 9월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토빈세 도입을 집중 거론하며 IMF에 이의 도입을 검토하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이다. 12월에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도하고 있으며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브라운 총리는 재무장관 시절에 토빈세 도입을 반대했다는 점인데, 그의 입장 변화는 정치적 이유 때문으로 관측되고 있다. 물론 가이트너는 신자유주의 본국의 재무장관답게 반대 입장이다. 어쨌거나 IMF는 올해 4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왜 지금인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토빈세 논의 부활의 배경이 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하나의 세금 문제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후기자본주의를 선두에서 끌고 왔던 금융산업에 대한 반성과 향후의 방향 설정이다.



금융시장은 본질적으로 강한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 성향이 인간의 탐욕과 결합할 경우 실물부문의 펀더멘탈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는 강한 원심력이 발휘된다. 흔히 버블로 불려지는 이 이탈의 후유증과 피해는 실로 막대하며 특히 경제적 약자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토빈 교수는 1984년 발표한 글에서 금융의 투기적 성향과 지나친 확장이 국가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한다고 지적하면서 그 잠재적 해악을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 값비싼 대가를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토빈세 그 자체는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당면한 진정한 과제는 투기성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실물부문과의 공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금융부문의 전면적인 시스템 개혁이기 때문이다. 감히 예견하건대 그 해결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금융은 21세기 자본주의 주역의 자리에서 물러날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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