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임자 임금 노조법, 노사정 합의 존중해야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9.12.25 09:00
글자크기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8대 국회는 연말이 다 되었지만, 최대 쟁점인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예산안 심사,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관련 노동법 개정 등 굵직한 현안으로 첩첩산중이다.

이러한 난제 중에서 노조법은 지난 4일 한국노총, 한국경총, 그리고 노동부가 참여한 가운데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 핵심 내용은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금지하되, 휴지기를 두고서 내년 7월부터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소기업의 합리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사 교섭ㆍ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 관련 활동'을 사업장 규모별로 적정한 수준의 타임오프제를 운영하고, 세부 사항은 노사정이 실태조사 등을 기초로 긴밀하게 협의해 합리적인 기준을 시행령에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재계는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지급 금지가 기본 입장이라고 외쳐놓고, 노사정 협의체에 들어갔다 오더니 고육지책이라며 타임오프제를 덜컥 수용했다.



한편, 정부의 정책만은 정도(正道)로서 결단을 했어야 했는데, '법과 원칙'은 '노사정 합의'로 교체됐다. 새로운 정책은 안 보이고, 지금까지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백년대계의 정책은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법치국가에서 법을 만들고서 '이여반장'(易如反掌)의 말처럼 손바닥 뒤집듯 세 차례에 걸쳐서 13년간 법시행을 유예하더니 미련 없이 방향을 선회해 닻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나마 어렵게 이뤄낸 노사정 합의안과 달리 근로시간 면제범위에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를 추가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사정 합의 후에 한국노총이 한나라당에 근로시간 면제범위를 확대해 줄 것을 추가로 요청했고,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가 근로시간 면제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첫째, 그 범위가 모호해 노사간 갈등의 소지를 갖고 있다. 법률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으면,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즉 관련 주체들이 모두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주장해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둘째, '통상적 노동조합 관리업무' 라는 일반적 개념에는 노사 교섭ㆍ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의 구체적 업무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법률에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와 같이 열거되어 있는 노사 교섭ㆍ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은 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셋째,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가 추가되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당초의 입법목적이 무색해진다.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가 포함되면, 상급단체 파견자, 파업준비 기간, 노조간부들 수련회, 노조원 교육 등의 시간이 면제대상이 돼 전임자가 사실상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개원한 지도 16개월이 지났다. 이제서야 국회가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에 대한 노동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막판으로 몰려서 예전처럼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를 불과 열흘 남짓 남겨두고서 극적으로 묘안을 내겠다고 하지만, 쉽게 합의를 이끌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합의를 이끌어 낸다고 해도 그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면 노사정 모두가 산업 현장에서 혼란만을 초래할 것이다. 이것은 정책방향을 예견할 수 있는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한 노동계의 핵심 쟁점을 해소하기 위해 당부할 수 있다면, 아쉬움은 크지만 노사정이 진지하게 협상해 합의한 정신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사사건건 허점을 찾아내어 비판만 하기 보다는 협력적 대안을 모색하는 양보와 배려심이 필요한 때이다.

지난한 물밑 협상의 결과를 귀담아들어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다. 모쪼록 국회가 '노사정 합의'만이라도 존중해서 제대로 처리해 이 세상을 위한 전화위복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