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에 몸사리는 은행원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09.12.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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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에 '달라진 풍경'…젊은 직원들 "계속 남는게 최고"

지난해 서울의 유명 사립대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입학한 김종수씨(가명·35)는 2년 전만 해도 '잘나가는' 은행원(과장)이었다. 그는 희망퇴직이 실시되자 미련없이 신청서를 냈다. 그동안 미뤄온 금융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퇴직신청이 곧바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은행 측은 영업점에 실무자급 직원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퇴직을 적극 만류했다. 김씨는 "젊은 직원들이 공부를 위해 희망퇴직을 결정했지만 은행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 적잖이 고생했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희망퇴직을 신청한 직원은 420명이며, 이중 412명이 은행을 떠났다. 김씨와 같은 과장급 이하가 105명이었다. 은행의 만류로 퇴직신청을 포기한 직원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이 은행은 2년 만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퇴직자에겐 24개월치 급여가 기본위로금으로 지급되고, 근속기간에 따라 특별위로금 등이 추가된다. 희망퇴직자들이 손에 쥐는 '목돈'은 최소 1억5000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2년 전과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공부나 전직을 위해 퇴직을 신청하던 젊은 직원들의 동요가 없다. 은행 관계자는 "부서장급 이상 직원들만 희망퇴직에 관심을 보일 뿐 과장급 이하는 시큰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이 커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직장인의 이직과 재취업이 더욱 어려워졌고 MBA 등 대학원 출신이라는 메리트도 줄었다.

은행 직원들도 이를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들은 해외 MBA들이 당당히 은행 문을 박차고 나간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분위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같다. B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은 희망퇴직에 큰 관심이 없는 것같다"며 "예전엔 퇴직관련 정보도 많이 돌고 관심있는 직원모임이 많았는데 지금은 잠잠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은행은 젊은 직원의 이탈을 우려, 올해 희망퇴직 자격요건을 더욱 높였다. A은행은 예전처럼 전직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부지점장 이상 관리자급으로 한정했다. 과장급 이하 실무직원은 출생연도를 따져 제한했다. B은행도 올 초 13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C은행의 15년차 직원은 "예전엔 은행업무에 싫증을 느껴 많은 직원이 퇴사를 고려했지만 지금은 경기상황 등을 감안한다"며 "젊은 직원 중 퇴사를 고려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는데 은행으로선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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