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美앵글교수 "키코 계약 기업에 불리"

김선주,변휘 기자 2009.12.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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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IKO) 계약에 오류가 있다. 키코 계약은 기업에 불리하다."

200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F. 앵글(67) 미국 뉴욕대 교수가 17일 국내 법정에 섰다. 앵글 교수는 통계를 이용해 시장의 위험성을 예측하는 방법을 연구한 파생금융상품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재판장 변현철 부장판사)가 심리 중인 D사와 우리은행·외환은행간 소송에 원고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공판은 키코에 가입했다가 지난해 환율급등으로 도산한 일부 중소기업이 은행에 책임을 묻는 일명 '키코 소송' 중 하나다.



민사대법정 466호에 들어선 앵글 교수는 영문으로 번역한 증인선서문을 읽은 뒤 키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그는 "D사가 은행과 맺은 키코 계약이 공평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키코 풀옵션의 경우 환율이 급락하면 무용지물"이라며 "키코 계약은 기업에 불리하다"고 답변했다.



또 "키코 계약을 구성하고 있는 풋옵션과 콜옵션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17개 기업의 키코 계약은 기업에 극히 불리한 불공정 계약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키코 계약으로 입을 수 있는 기업의 최대 손실금액은 은행의 최대 손실가능금액보다 평균 100배 정도 높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판은 외국인 증인 출석으로 인한 독특한 진행 방식으로도 주목받았다. 변현철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직전 앵글 교수에게 "나라마다 법정 문화가 다른 만큼 불편한 일이 있을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통역은 원고·피고측 변호사 2명이 담당했다. 원고측 신문은 원고측 통역이, 피고 측 신문은 피고 측 통역이 맡았다. 변 부장판사는 앵글 교수가 답변을 마칠 때마다 상대방 측 통역의 동의를 구했다.


만약 양 측 통역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앵글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 정확한 통역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용어가 매끄럽게 통역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변 부장판사는 원고 측 통역에게 "조서를 작성해야 하니 정확하게 딱, 딱 끊어서 말하라" "천천히 말하라"고 거듭 주문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영어로 된 경제용어는 가급적 한국어로 바꿔달라"는 주문도 했다.



그러자 원고 측 변호인은 "통역이 금융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어로 바꾸는데 어려움이 있다. 원고 측의 또 다른 변호사가 신문 이후 보충하면 안 되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변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이 흐트러지고 있으니 조서에는 일단 (통역이 전한 영어 단어로) 기록하고 나중에 (한국어로) 확인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한편 우리은행 등이 앵글 교수의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 스티븐 로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 '키코 소송'이 세계적인 석학들의 대결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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