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온 날 국회 점거 재현

심재현 기자, 김지민 기자 2009.12.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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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장석 쟁탈전' 반복 왜

국회가 17일 단상 점거 구태를 반복했다. 같은 시간 국회에선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시되는 시진핑 부주석이 김형오 국회의장을 예방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9시35분쯤 국회 본관 3층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단상을 점거했다. 예산안을 최종 증액·감액하는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를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담 뒤에 구성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예결위는 이날 오전 10시 한나라당 단독으로 계수조정소위를 구성할 예정이었다.



'기습'을 당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몰려들면서 단상을 점거한 민주당 의원들과 사이에 막말과 고함이 오갔다. "예산을 깎더라도 소위를 구성하고 나서 깎아야지 이게 무슨 짓이냐"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그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위원장석에 앉아 있던 예결위 민주당 간사 이시종 의원이 "청와대에서 3자회담을 하는 것을 보고 예결위를 진행하자"고 하자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 등은 "국회의원이 청와대 지시를 받고 움직이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대치상황이 1시간가량 흐르자 심재철 예결특위 위원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심 위원장은 위원장석 옆에 선 채 개회와 동시에 정회를 선언했다. 없어진 의사봉 대신 심 위원장의 주먹이 탁자를 두드렸다.

여야 대치가 이어지는 내내 예결위 회의장 맞은편 국회의장실에선 시진핑 부주석이 김형오 의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방을 마친 시진핑 부주석은 오전 9시55분쯤 김 의장의 배웅을 받으며 예결위 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지나 국회를 떠났다. 로텐더홀을 가득 메운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들은 시진핑 부주석이 아니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몸싸움'을 취재하고 있었다.

◇ '의장석 쟁탈전' 왜 = 여야의 의장석 쟁탈전은 오랜 '관행'이다. 2002년 3월7일 이후 시작됐다. 이때 국회법 제110조 '표결할 때는 의장이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선포해야 한다'는 규정에 '의장석에서'라는 문구가 더해졌다.


지난해 말과 올 초 'MB(이명박 대통령) 악법 저지'를 외치며 본회의장 점거 농성에 들어갔던 민주당도 의원들 몸을 등산용 로프로 묶는 '인간사슬'로 의장석 주변을 에워쌌다. 의장이 의장석에 서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2002년 전에는 의장이 의장석이 아닌 곳에서 법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경우가 적잖았다. 1994년 12월2일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일의 일이다. 당시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장 2층 기자석에 등장했다. 예산안 처리를 두고 어김없이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의장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야당은 무효를 외쳤다. 하지만 4일 뒤인 12월6일 당시 황낙주 국회의장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장소라면 어떤 곳에서도 할 수 있다"며 '기자석 사회'를 정당화했다.

3당 합당으로 221석의 공룡 여당이 된 '민자당 국회'에선 상임위원장이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의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국회부의장이 본회의장 의석 가운데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안건을 무더기 처리하는 일도 있었다. 국회의장이 본회의장 뒤편 통로에서 안건을 기습상정하고 가결을 선포하기도 했다.

입법의 전당에서 벌어진 이 같은 편법은 2002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막을 내렸고 '의장석 쟁탈전'이 대신 그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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