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좋은 WTI가 질나쁜 두바이유보다 싸다?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09.12.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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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두바이유 가격역전 3주째…WTI 위상 '흔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급 원유로 통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보다 배럴당 5달러 가까이 낮게 거래되면서 국제 석유가격 지표 자리마저 내줄 위기에 처했다.

7일 국제 석유 시장에서 WTI 선물 내년 1월물은 전날보다 배럴당 1.54달러 하락한 73.9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두바이유 현물은 이보다 비싼 78.18달러에 거래됐다. 두바이유 가격 하락폭은 0.2달러에 불과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76.43달러로 역시 두바이유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통상 유황의 함량이 낮은 질 좋은 경질유인 WTI는 유황 함량이 높은 중동산 중질유인 두바이유에 비해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WTI 가격은 두바이유 가격과 엎치락뒤치락 하다 지난달 19일부터 줄곧 두바이유 가격을 밑돌고 있다. 질 나쁜 기름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이상 현상이 상당기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유 가격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우선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의 경기 회복세가 미국이나 유럽연합(EU)보다 빠르기 때문.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아시아 이머징 국가의 오일 수요는 지난해보다 하루 50만 배럴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지역에 속한 한국과 중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각각 86.3%, 50.1%에 달한다.

반면 미국 및 유럽 지역 석유 수요는 오히려 16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7일 WTI 가격이 급락한 것도 이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경기 회복이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WTI 재고량도 늘고 있다. WTI 선물이 인도되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Cushing) 지역의 원유 재고량은 지난 10월말 2550만 배럴에서 한달새 3100만배럴로 늘었다. 여기에 최근 유럽 지역은 온화한 날씨 때문에 난방용 원유 수요도 예상보다 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중동 국가들을 위주로 구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올들어 유가가 상승했음에도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두바이유가 강세를 유지하는 이유로 꼽힌다.



OPEC는 지난해 12월 총회에서는 생산량을 당초 2905만배럴에서 2485만배럴로 줄이기로 하고 현재까지 이 목표치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바이아는 지난해 하루 최대 950만배럴을 생산했지만 현재 생산량은 하루 820만배럴에 그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OPEC의 감산 목표치 준수율이 올초 70%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60%대 초반대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가격 역전 현상은 WTI의 국제 원유가격 지표로서의 위상도 흔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0월 WTI가 더이상 유가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자국 원유 판매 가격의 기준으로 삶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1994년부터 미국에 파는 유가 기준으로 WTI를 사용해 왔다.



이어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지난 5일 미국내 경질유 판매 가격을 WTI가 아닌 영국 유가 산정회사 아거스(Argus)가 만드는 ASCI 가격을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

한편 8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0 유가전망' 특별보고서에서 두바이유의 내년 연평균 가격은 올해 평균보다 21% 상승한 배럴당 74.5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세계 경제 성장이 예상보다 빠르고 투기 거래가 확산될 경우 두바이유 가격은 100달러 수준에 근접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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