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소송, 경제석학 대리전 되나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9.12.0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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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기업이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투자손실을 놓고 벌이는 법정공방이 세계적인 석학들의 이론논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들은 최근 김&장 등 소송대리인을 통해 스테픈 로스와 존 칵스 등 미국 MIT대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들을 증인으로 섭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 측이 세계적인 석학을 재판에 증인으로 섭외한데 따른 대응조치 성격으로 풀이된다. 앞서 키코 투자손실을 입은 D사는 로버트 엥글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를 이달 17일 열릴 재판에 증인으로 섭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엥글 교수는 파생상품의 가격형성 근거를 설명한 아치(ARCH)모델의 연구로 200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반면 로스교수는 아치모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평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서 발생한 일을 놓고 경제학자들의 이론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면서도 "일단 소송 상대방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증인으로 섭외했으니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송대리인인 등을 통해 해외석학들의 증인채택을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로펌에서는 3~4명의 금융공학 부문 석학들을 증인후보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학계나 파생상품 전문가들을 통해 대응논리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일단 엥글 교수의 증언을 들어보자는 신중론도 적잖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엥글 교수의 증인참석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나, 키코소송은 이론이 아니라 시장의 현실을 본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엥글 교수가 키코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지는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은행에 지불한 수수료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상품설계나 판매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엥글 교수의 증언 후 대응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엥글교수가 연구한 아치모델 대신 블랙숄즈 모델이 주로 쓰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블랙숄즈 모델은 블랙과 숄즈가 1973년 시카고 대학 논문집에 발표한 것으로, 이후 옵션 등 파생상품이 확대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97년 노벨경제학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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