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사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 원안추진에 도지사직을 걸겠다는 약속을 해 왔다"며 사퇴를 밝혔다.
또 "정부가 '효율'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고도 남을 '신뢰'라는 가치가 있다"며 "행정도시가 무산될 때 신뢰는 깨질 것이고 국민의 좌절과 상처, 갈등과 혼란은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사의 사퇴에 여권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날 이 지사의 기자회견이 끝난 지 30분만에 "아직 정부의 대안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민과 충청도민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분이 경솔한 모습을 보여 무척 안타깝다"는 짧은 논평을 냈다.
청와대도 반응을 자제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으로 이해하지만 안타깝다"며 "충청도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사태니 만큼 여론 동향을 살피겠다는 의중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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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은 모처럼 호재를 만났다는 모습이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이 지사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국회 기자실을 찾아 "이 지사는 약속을 지켰다"며 "이제 이 대통령이 약속을 지킬 차례"라고 여권을 압박했다.
이날 이 지사가 사퇴를 밝힌 것은 '죽어서 산다'는 제언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수정안을 검토하면서 충청민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인사를 제외한 만큼 정부안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세종시 수정이 현실화될 경우 '도백(도지사)'으로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적잖다. 이럴 바엔 일찌감치 사퇴하면서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 이후 뚜렷한 대안이 없는 '충청권 맹주'로 올라설 수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년 2, 3월쯤 여권 내 권력개편이 진행된다면 충청권 여론 흐름을 타고 '히든카드'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가 도지사직을 사퇴하면서도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면서 한나라당 당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은 이런 관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