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른 KB금융·말린 당국, 왜일까?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9.12.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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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말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KB금융 (83,600원 ▲1,100 +1.33%)지주에 전해졌다. "회장 선임 일정을 서두르지 마라.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냐"는 게 골자였다.

금융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은 이랬다. "절차를 제대로 밟으면서 진행해야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겠나.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가도 될 것으로 본다".



여기엔 KB금융이 서두르고 있다는 당국의 인식이 담겨있다. 곧 강정원 KB국민은행 행장의 속도전에 대한 '경고'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하지만 KB금융 이사회는 반대 길을 택했다. '천천히' 가라는 주문을 뒤로 하고 정해진 일정을 밟았다.

한 쪽은 서둘렀고 다른 한 쪽은 이를 막으려 했다. 어찌 보면 굳이 서두를 필요도, 굳이 막을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는데도 말이다.



↑ KB금융 회장에 만장일치 추천된 강정원 행장.<br>
↑ KB금융 회장에 만장일치 추천된 강정원 행장.


왜일까. 이면에는 지난달 초 발표된 '은행권 사외이사제도 개선방안'이 놓여 있다. 개선방안은 금융연구원이 마련했지만 실제론 금융위원회가 주도한 야심작이다.

발표 당시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에 초점이 쏠리면서 신한지주 (55,500원 ▼1,400 -2.46%), 하나금융지주 (61,600원 0.00%) 등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던 그 방안이다.

하지만 금융위가 방점을 찍은 부분은 다른 지점이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은 강화하되 다른 한편으로 권력화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장치가 중요하다"며 "특정한 지주회사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 모든 지주회사가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내용이 사외이사 선임 과정과 적격성 여부를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누가 추천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후보가 됐는지가 공개된다. KB금융처럼 사외이사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관행은 지속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사외이사 순환보직제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외이사가 사장추천위원회 등에 장기간 참여하면서 '권력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다.



이 역시 KB금융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KB지주 회장추천위원회의 경우 사외이사 9명으로만 구성돼 있는데 이 같은 구성의 변화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한 지점이나 부서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한다"며 "사외이사도 한 보직을 오래 누리면 권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금융위는 제도 개선 후 KB지주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자는 데 무게를 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KB지주측은 현 체제 하에서 절차를 마무리짓는 쪽으로 속도를 낸 셈이다.



당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도 개선과 KB금융 회장 선임이 병행되면서 '타이밍(시점)'이 중요한 키포인트가 됐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KB지주 회장 선임과 별개로 사외이사 제도 개선은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연말까지 마무리짓고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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