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대마불매(大馬不賣)도 아니다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국장대우 금융부장 2009.11.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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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의 '판'을 바꿔보려는 움직임이 재개되고 있다. 정부가 우리금융 지분 7%를 블록세일로 매각하고, 외환은행 인수의향을 밝힌 곳도 늘어나면서다. 우리금융 (11,900원 0.0%)지주가 숙원인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른 금융그룹과 손을 잡거나 KB금융 (82,600원 ▲1,300 +1.60%)하나금융지주 (59,500원 0.00%)에 이어 산은금융지주에서도 러브콜을 받은 외환은행 (0원 %)이 이중 어느 한 곳에 팔리면 은행권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다.

우리금융의 자산은 지난 9월말 현재 330조원, 외환은행은 100조원 규모다. 한때 소문처럼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이 손을 잡고, KB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다면 자산이 각각 300조원 안팎인 은행권 '빅3'의 면면이나 상호 격차가 달라진다. 수신기반 확대에 고심하는 산은금융지주가 정부의 후원 아래 외환은행을 끌어안는 경우 기존 '빅3'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인수·합병(M&A)의 주체나 객체로 거론되는 금융지주회사나 은행들은 사실상 '칼'을 쥐고 있는 정부를 바라보지만 당국은 아직 팔짱을 낀 모습이다. 일부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금융산업 재편의 큰 그림을 그려보거나 언론이 이들의 행보를 시시각각 전하는 것을 호들갑쯤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런 '신중한' 입장은 무엇보다 M&A 대상이 너무 커서 매각이나 인수가 그리 쉽겠느냐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파악된다. 소위 '대마불매'(大馬不賣·too big to sale)라는 얘기다.

큰 덩치 문제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매각절차가 지연되거나 진통을 겪는 대우조선 (31,300원 ▲700 +2.29%)이나 대우건설 (3,745원 ▼20 -0.53%)이 지금보다 몸집이 작았다면 일찌감치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았을 것이다. 우리금융이나 외환은행의 몸값을 낮추는 방안이 제기되는 것도 '대마불매'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증권가에선 우리금융의 경우 광주은행과 경남은행, 우리투자증권 (13,760원 ▲350 +2.61%)을 각각 떼어내 팔거나 우리금융 지분은 경영권이 포함된 최소한의 규모로 새로운 인수후보에 넘긴 후 나머지는 시장에 분할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곤 한다. 외환은행에 대해선 국내은행의 제한적인 인수여력을 감안해 내년 초 대규모 배당을 실시해 몸값을 낮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당국이 팔기가 간단치 않다는, 규모 만의 문제로 은행권 M&A 논의에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덩치가 크면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그로부터 10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된 미국에서 깨졌듯 '대마불매' 역시 불변의 경험칙은 아니다. 시장에서 실현 가능한 M&A 구상이 나오고, 시장독과점 소지도 없다면 정부가 막을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세계적인 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내 주자를 만드는데 '외형'이 필요충분조건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당국에선 국내 은행 지주회사들이 규모는 키웠지만 내부 시너지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 은행 M&A에 소극적이라면 이해 못할 바는 없다.


궁금한 것은 당국이 은행이나 금융산업의 미래에 대해 큰 그림이나 지원전략을 세워두었느냐다. 당국의 대응력이 은행산업 재편의 속도나 방향을 좌우한다. '대마불매'를 핑계삼아 은행들의 움직임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다면 금융산업의 도약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우리금융 대주주라는 지위상 피할 수 없는 M&A 당사자이기도 하다. 아울러 큰 말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장을 키우는 데 정부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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