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리더십', 모래 위 꿈이었나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09.11.2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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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www.sheikhmohammed.co.aeⓒwww.sheikhmohammed.co.ae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UAE) 7개 토후국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어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바이에서 옛 흔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인공 섬 리조트가 모습을 갖춰가고 고개를 한참 꺾어야 할 마천루의 즐비한 숲이 사막에 솟아 있다.

두바이를 중동판 상전벽해의 현장으로 만든 주인공이 두바이 지도자이자 UAE 부통령 겸 총리인 셰이크 모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58)이다.



영국 유학으로 다진 국제감각과 네트워크, 상상력과 추진력이 그의 무기였고 두바이의 오일머니는 여기에 날개를 달았다. 그의 지도 아래 두바이는 눈부시게 발전해 UAE의 종주국이자 수도인 아부다비의 위상을 넘볼 정도가 됐다. 그는 국가·기업 경영의 새로운 모델로 인정됐고 국내에도 그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1949년생인 그는 전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라시드의 아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셰이크 사이드 알 막툼 저택에서 자랐다.



모하메드 왕자는 17살이던 1966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국 케임브리지의 명문 어학교육 기관인 벨 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세계 각 대륙에서 온 유학생과 친분을 쌓는다.

68년 영국에서 돌아온 셰이크 모하마드는 그해 11월 두바이 경찰총수로 임명돼 공직에 입문했다. UAE가 영국에서 독립, 연방을 세운 1971년 12월엔 초대 국방장관에 올랐다.

셰이크 라시드는 그에게 중동에서 가장 큰 조선시설인 두바이 건식 도크를 맡겼고 77년 8월엔 두바이 국제공항 운영이라는 중책을 맡기면서 경험을 쌓게 한다. 그는 이때부터 두바이를 금융·관광 허브로 만드는 데 착수한다. 석유는 언젠가는 고갈되는 만큼 새로운 성장 동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같은 해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 건설까지 맡아 두바이를 물류 중심지로 바꿔 놓는다. 이른바 7성급 호텔로 알려진 삼성물산의 부르즈 알-아랍 호텔과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는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 프로젝트도 그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꿈의 성장판'이던 두바이월드가 사실상 모라토리엄으로 몰리며 그의 명성도 저물어가는 두바이의 위용과 함께 금이 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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