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0일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보고 특별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100여년 전만해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2010년이 한일합방이 이뤄진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봐도 국제사회에서 변화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은 수많은 치욕을 겪었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금메달을 딴 것은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일 뿐이다.
1945년 민족 해방을 이뤘지만 한국은 민족의 앞날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미국과 영국, 소련 등이 얄타회담, 포츠담선언, 카이로 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일방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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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남한 단독 정부를 구성하면서 남북 분단이 시작됐고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북 분단은 고착화됐다. 이후에도 국제사회의 냉전은 한반도에서 반세기가 넘는 남북한 분단 체제로 이어졌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이 미군 트럭이 지나갈 때 '기브 미 초콜릿'을 외쳤던 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를 이끌어간 유엔(UN)에도 지난 1991년에야 남북한 동시 가입 방식으로 가입했다. 이미 짜놓은 세계질서에 편입하는 것조차 20년이 채 되지 않은 셈이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경제치욕까지 겪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IMF의 간섭에서 벗어났지만 IMF가 남긴 명예퇴직, 중산층의 몰락 등의 유산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회의에 참석해도 제 주장을 펴진 못했다. 선진국의 얘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G20 정상회의 개최로 아직 부족하지만 한국을 대하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달라졌다.
최희남 G20 기획단장은 "과거에는 선진국이 정해놓은 질서와 규칙을 그대로 따른 롤 테이커(rule-taker)였다면 이제는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롤 세터(rule-setter)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