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원의 재테크 하소연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09.12.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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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남보원 재테크-1 / 돈버는 기계의 슬픔

“꽃다발은 기본옵션! 곰 인형은 부록이냐! 바라는 게 없다더니! 그 표정은 무엇이냐! 니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정성 따윈 필요 없다! 같은 가격 선물해라!”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남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름 해서 남성보장인권위원회, 즉 '남보원'이다.



격렬한 구호로 남성에 대한 성차별을 고발하는 성토가 줄을 잇는다. 발원지는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남보원'.

“여성 여러분, 자동차 있는 남자친구만 골라 사귀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사실 우리 남성들 차가 있어도 고생, 없어도 고생입니다. 차가 있다 하면 그 순간부터 대리기사 노릇 해야 되고, 없다 하면 무시합니다. 지 친구들한테 소개도 안 시켜 주고.”
남보원의 재테크 하소연


어떻게 보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일지 모르나, 대한민국 남성들의 공감대는 상상 이상이다.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부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결혼 한번 하려고 해도 전세자금이 없어 애인 눈치만 본다. 열심히 일해서 내집 장만 하고 아이들 키웠는데 남은 건 앞날이 깜깜한 빚더미다. 회사 일에만 매달려 온 채 하루하루를 보냈으니 은퇴하고 나면 결국 아내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나도족’ 신세.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거, 참 힘들다.



손우철 TNV어드바이저 AD센터장의 실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곁들여(?) 재구성해 보았다.

◆2030 남보원씨의 하소연
“1억 없으면 장가도 못 갑니다.”


“야, 요즘 서울에서 집구하기가 쉽냐? 여자친구가 죽어도 전세는 싫다는데, 부모님이 도와주실 형편도 안되고. 죽을 맛이다 요즘 내가.”


“얼마 전에 동료들이랑 술자리에 그 얘기가 나왔는데, 여직원들이 하나 같이 그러는 거야. 최소한 24평 정도 전셋집은 마련할 능력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말이 쉽지. 아무리 변두리라도 요즘 서울 시내에서 전셋집 하나 구하려면 최소 1억원 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무서워서 여자를 안 만나는 거라니까.”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비슷한 얘기들이 이어진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남보원 씨. 얼마 안 있으면 장가를 가는 친구의 결혼 축하를 위해 모인 자리다. 그런데 결혼을 앞 둔 녀석의 표정이 그리 밝지 만은 않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결혼을 앞두고 누구나 하는 고민, ‘집’ 때문이다. 눈치로 보아서는 여자친구도 쉽게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양이다.

“나라고 좋은 집에서 새출발하고 싶지 않겠냐.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대출 끼고 별짓 다 해봐도 빚은 또 언제 갚냐고. 이 결혼 꼭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남씨 역시 5년째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 미루고 있다. 아니 굳이 결혼을 미룬다기보다는 당장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집값을 포함해서 아직은 결혼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핑계다.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연 것은 바로 그 결혼을 앞둔 친구다.



“그래도 말야. 한달에 들어가는 데이트 비용 만해도 그게 얼마냐. 이벤트 하는데 10만원 뚝딱, 영화보고 밥 먹으면 10만원 또 뚝딱, 때마다 여자친구 선물 사줘야지. 이거 다 모으면 벌써 부자 되고도 남았겠더라. 차라리 빨리 결혼해서 돈 모으는 게 빠르겠다 싶더라고.”

남씨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여자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물론 나와 인생을 함께 해준다면 더 없이 좋을,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다. 시작부터 이렇게 삐그덕거리는데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남씨는 괜히 자신감이 없어진다.

◆4050 남보원씨의 하소연
“밤낮 없이 일했는데 식구들에게 저는 없습니다.”




아들 셋을 둔 남보원 씨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알뜰한 아내 덕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 서울 목동에 번듯한 집 한채도 갖고 있다. 처음으로 이 집에 이사 들어온 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삼겹살 파티는 남씨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 남씨에게 요즘 고민이 있다. 아들 셋이 나란히 대학에 입학할 때가 되니 등록금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아내가 “우리 옆집 아이는 OO수학학원을 보내는데”와 같은 이야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국영수 위주로 예습복습만 열심히 해서도 다들 공부를 잘한다는데. 어찌 그리 아내의 주변에는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영어를 술술 하게 됐다는 옆집 딸, 좋은 학원을 다녀서 한달 만에 성적이 10등이나 올랐다는 친구 아들이 많은지 참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고, 남씨는 일부러 야근을 자원해 그 수당으로 아이들 학원비를 충당해 왔다. 그래도 아버지라는 게 그런 걸까. 아이들에게만큼은 항상 원대로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남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위의 두 아들은 모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무이자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나마 공무원이라는 직업 덕을 톡톡히 본 셈. 큰아들의 등록금으로 받은 학자금 대출이 모두 2100만원 정도, 대학 3학년인 둘째아들도 졸업할 때쯤엔 3000만원 정도의 액수가 될 것이다. 대학 등록금 1000만원시대에 입학하는 막내아들은 아마도 4000만원 정도? 어림잡아도 1억원 정도가 되는 액수다.

남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놓을 생각이다. 현재 집의 시가가 6억원 정도되니 아이들 등록금을 충당하고 5억원 정도면 공간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다섯식구가 둥지를 틀만한 집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집 살 때 얻은 빚 갚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사를 가자고?” 역시나 예상대로 아내는 내심 서운한 눈치다. 왠지 오늘따라 아내의 잔소리에도 힘이 없는 듯하다. 남씨는 슬그머니 잔소리를 피해 작은 방으로 도망가 TV를 켠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가 못 되는 것 같아 속상하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만하면 모자람 없이 풍족하게 잘 사는 거지,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뼈 빠지게 일했는데, 도대체 뭐 그리 바라는 게 많아. 억울한 마음이 울컥 솟기도 한다. 이런 날 다 큰 아들들과 함께 술잔이라도 기울이면 위로가 되련만 요즘에 다 컸다고 지들 일이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다.

"대학생 44% 우리 아버지에게 있었으면 했던 것, 재력!

어느 날 문득 보니 나는 집안에서 세탁기도 못 돌리고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 먹는 돈 버는 기계가 되어있었습니다" (EBS 지식채널, 56점 인생 중)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한 다큐멘터리의 글귀에 오랫동안 남씨의 눈길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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