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금융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9.11.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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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경기부양에 따른 성장세 전환에 현혹…금융위기 절반도 못왔다

금융위기의 불씨는 아직 사그러 들지 않았다.

수직 낙하했던 글로벌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며 잠시 잊었을 뿐이다. 성장세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에 힘입은 바 크고 정작 위기의 진원인 금융시스템에 대해서는 손을 보지도 못했다. 일시적 응급조치로 전면적인 붕괴를 막았을 뿐이다.

오히려 되살아난 금융권은 넘쳐나는 유동성과 저금리를 이용, 다시 글로벌 자산 거품을 키우고 있다.



최근 이에 따른 우려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한 경고가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급기야 금융권의 손실이 아직 절반도 드러나지 않았다며 섣부른 회복세에 일침을 가했다.

◇ 스트로스-칸 "금융권 손실 절반도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의 신용디폴트스왑(CDS) 거래가 1년 전에 비해 폭증한 것도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 미국의 CDS 거래량은 1년전 4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배가 넘는 100억달러에 달한다. 영국의 CDS 거래량도 120억달러에서 240억달러로, 일본도 7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어났다.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23일 런던에서 열린 영국산업연맹(CBI) 연차 총회에 참석,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은행권 손실의 절반 가량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경제정상화를 위해 가야할 길이 멀다"고 경고했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만약 4~5년후 전세계적 금융위기가 다시 닥친다면 대중은 금융산업을 재차 구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금융산업은 높은 자기자본비율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최근들어 금융위기가 끝났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의 경고를 그냥 지나치기에 경제 상황은 너무나 암울하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케네스 루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0일 "미국 경제의 회복을 절대 낙관할 수 없고 금융권도 갈 길이 멀다"고 쓴소리를 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설립자 빌 그로스가 최근 경제 붕괴와 관련된 '체계적 위험' 증대로 안전자산인 미 국채 비중을 63%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힌 점은 최근 금융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발언이 장난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S&P "은행 재무구조 취약"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이날 전세계 주요 은행 대부분이 취약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S&P가 최근 45개 주요 은행들을 대상으로 지난 6월 말 기준 위험보정자본(RAC) 비율을 산출한 결과 UBS, 씨티그룹 등 대부분 은행들의 재무건전성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씨티그룹의 RAC 비율은 2.1%, 일본의 스미토모미쓰이와 미즈호은행은 각각 3.5%, 2.0%의 낮은 비율을 기록하는 등 45개 은행 중 기준선인 8% 이상인 은행은 9개에 불과했다.

RAC비율이 2%대인 UBS는 기존 기본자기자본(Tier1)비율이 13% 이상이어서 현행 체제하에서는 은행들의 상대적 취약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한다. RAC 비율이 '바젤II'에 반영될 경우 UBS 등 은행들은 추가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



베르나르 드 롱지비알 S&P 애널리스트는 "주요 은행들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무건전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 美 이중침체 현실화 우려

'위기 진앙지' 미국에서는 '더블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연말 쇼핑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두고 소비자들의 신용경색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말 매출이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어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또 다른 뇌관인 상업용 부동산 대출 손실은 여전히 확대일로에 있으며, 주거용 모기지대출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포사이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내년 4분기 상업용 부동산 디폴트 규모는 17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자로 경기부양을 위해 손을 쓸 여력은 거의 없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기준금리를 제로 금리 수준으로 당분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속수무책이다.

중소기업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비자신용정보업체 에퀴팩스에 따르면 3분기 중소기업 파산신청은 전년동기대비 44% 급증했다.



그러나 월가 금융기업들은 그동안 부실자산으로 분류되던 모기지증권(MBS)을 다시 우량자산으로 잡는 등 '눈가리고 아웅식' 재무재표 세탁에 나섰다.

대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아 동맥경화 현상이 심화됐지만, 기존 투자은행의 영역에서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한술 더 떠 천문학적 보너스를 지급하는 '도덕적해이'를 보이고 있다.

◇ 英 금융권 2차 지원, 中 자산거품 붕괴 우려



영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 3일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와 로이즈뱅킹그룹에 370억파운드의 자금을 추가 투입키로 결정했다. 영국 정부가 1년전 투입한 자금과 같은 규모로 영국 은행들의 위기가 진정되지 않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RBS와 로이즈뱅킹그룹은 금융위기 발생직후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 이미 정부 지분율이 70%, 43%에 달한다. 사실상 국영은행에 추가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은 영국 금융권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한다. 유럽연합(EU) 각국들의 요구로 영국 정부의 인위적인 금융 구조조정 방안도 마련됐다.

중국은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대출 증가세 등 과열이 문제다.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국내 은행들에게 자본 충족 요건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경고장을 발송했다. 은행들이 자본충족 요건을 맞추는데 실패한다면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경제가 자산 거품 붕괴라는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는 국내외 경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결국 '과열 방지'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중국 자산 거품이 붕괴될 경우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중국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켜 경제 성장에 치명타를 가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이상의 충격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반면 일본은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고 공식 언급했다. 일본은 이미 공공부채가 199.8%를 기록,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회복 국면에 있는 경제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의 망령이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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