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IC-서영태 관계 주시한 현대重의 역전승

더벨 박준식 기자 2009.11.1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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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권 침해 참던 현대重..공동경영 계약위반 파고들어

더벨|이 기사는 11월17일(08:0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현대중공업 (194,500원 ▼3,800 -1.92%)의 승리로 막을 내린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분쟁. 1년 반 동안 지속된 이 국제중재의 핵심은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가 현대중공업의 주주권을 침해했는지에 집중됐다.



거증 책임은 중재 소송을 제기한 현대중공업 측에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IPIC의 주권 침해 사실을 입증해야 당사자 간 계약에 따른 강제매각권(Deemed Offer)이 발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숨기려는 최대주주와 찾으려는 2대주주간의 싸움이었다.

사실 현대중공업은 소송을 제기한 초반만해도 불리한 입장이었다. 이미 현 에이전트가 IPIC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 IPIC가 선임한 서영태 사장은 지난 2002년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오일뱅크 사장으로 옮긴 전문경영인이다. 서 사장은 IPIC 입장에서는 지난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오일뱅크)를 정상화시킨 공신이지만 현대중공업으로서는 걸림돌이었다.



현대중공업은 IPIC와 분쟁을 시작한 계기가 전문 경영진의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 사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현대중공업과 IPIC는 공동경영을 하는 등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현대중공업이 중요 현안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야기됐다.

시계열 순으로 되짚으면 이해하기 쉽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옛 현대그룹 계열사이던 현대오일뱅크는 경영난을 겪다 99년 IPIC를 투자자로 맞았다. 5억 달러를 IPIC에서 수혈 받는 대신 지분 50%를 넘겨 조인트벤처 형식의 공동 경영을 약속한 것.

문제는 당시 경영 상황이 단시간 내에 개선될 수준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시황 악화로 2003년 다시 자금 소요가 크게 일었다. 경영진에 의해 제안된 해법은 계열 분리된 옛 현대그룹 대신 IPIC가 보증을 서고 유동성을 차입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제안이 공동 경영의 균형을 완전히 깨뜨리는 계기가 됐다. 다급한 현대 측은 서영태 사장 등을 믿고 IPIC의 조건을 수용하면서 추후 경영상황이 개선되면 현대 측 지분 중 20%를 추가로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3년 만에 오일뱅크의 경영상황이 개선되자 IPIC는 보증 대가로 내건 콜 옵션을 행사했다. 현대 측 지분 20%를 추가로 얻는데 지불한 금액은 주당 4500원씩 2200여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때부터 경영권은 IPIC에 완전히 넘어갔다. IPIC는 동시에 2억 달러의 우선 배당권도 챙겼다.



분쟁은 이때부터 심화됐다. 오일뱅크의 실적이 이후 크게 나아지는 데도 IPIC는 번번이 2억 달러의 배당금 수령을 지연했다. IPIC는 실제로 2006년 이후 1억8000만 달러의 배당을 실시한 후 2000만 달러를 미뤘다.

주주 간 계약에 따라 IPIC가 배당을 모두 수령하기 전까지 오일뱅크 지분 30%를 가진 현대 측 주주들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IPIC와 현 경영진은 오일뱅크가 고도화 설비 투자 등을 위한 브라보 프로젝트를 위해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설상가상 IPIC는 2006년 하반기부터 보유 지분 70% 중 과반을 코노코필립스 등 전략적 투자자(SI)에 매각하려 했다. 현대 측의 의결권이 묶여있는 사이 오일뱅크 경영권마저 매각해 차익을 더 크게 거두려던 속내다.



현대중공업은 이런 계획이 재임 기간을 늘리려는 서영태 사장과 투자수익을 높이려는 IPIC의 합작품이라고 간파했다. 이를 입증할 수만 있다면 중대한 계약위반(Material breach)으로 인한 강제매각권 발동이 가능했다.

국제중재를 신청한 현대중공업은 중재법원 구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양 당사자가 한명씩 선임하고, 나머지 한명은 합의에 의해 정해지는 게 룰이었다. 다행히 중재법원 의장은 저명한 밀 케플란(영국)이 맡았고, 다른 두 명 역시 공정한 판결로 유명한 마이클 모져(미국)와 마이클 프라이어스(호주)가 됐다.

현대중공업은 법률대리인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했다. 담당을 맡은 김갑유 변호사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국제중재분야 세계최고 권위의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 위원으로 선출된 인물. 김 변호사 팀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IPIC의 오일뱅크 운영위원회 보고서류 수천페이지를 모두 뒤지는 치밀함을 보였다.



현대중공업은 이 과정에서 IPIC가 현 경영진을 일부분 해고하려 했지만 소송으로 인해 미룬 사실과 IPIC의 오일뱅크 경영권 매각의도 등을 집중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IPIC가 배당을 고의로 미룬 사실을 입증하면서 오일뱅크의 경영자로서 누가 더 적합한가를 부각시킨 셈이다.

이런 노력은 문제를 '소수 주주의 반란'이 아니라 '공동 경영인의 계약위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오히려 중재법원은 IPIC를 현대 측의 경영 파트너가 아니라 과욕을 부리는 재무적 투자자(FI)로 인식했다. 현대 측이 20% 지분을 원가에 넘긴 것은 주주 간 계약을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고, IPIC가 배당 수령을 게을리 한 것은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한 사례로 납득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IPIC와 오일뱅크 경영진은 자신들이 결과에서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며 "예상을 뒤 짚은 비결은 현대중공업 측이 집요하게 IPIC 측의 과욕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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