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되찾는다

머니투데이 장웅조 기자 2009.11.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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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국제중재법원서 對 IPIC 소송 승소… 시세보다 싸게 지분 매입

현대중공업 (194,400원 ▼3,900 -1.97%)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중동자본에 넘겼던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을 10년 만에 되찾을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70%를 보유한 최대주주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와의 국제중재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15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국제중재법원(ICC)은 지난 12일 현대중공업과 IPIC와의 국제중재에서 "IPIC가 2003년 현대중공업과 체결한 주주간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이 제기된 지 1년8개월만의 결정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IPIC는 그간 보유해 온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현대중공업에 매각해야 한다. 양사의 계약서에는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쪽이 상대방에게 보유 지분 전량을 시장가격의 75%로 넘겨야 한다는 '강제매각권'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매각될 지분의 시장 가격은 2조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국제중재법원 결정은 단심제이기에 이번이 최종 판결이며, 법조계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사건 종료'로 받아들이고 있다. ICC의 판결에 불복할 경우 개별 국가의 법원으로 갈 수도 있지만, ICC의 결정을 뒤집은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1999년 IMF 경제위기의 여파로 IPIC에게 현대오일뱅크(당시 현대정유) 지분 50%를 매각했다.

2002년 현대오일뱅크가 다시 자금난을 겪게 되자 대주주인 IPIC는 단독으로 오일뱅크에 4억 5000만 달러를 지원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현대중공업은 2003년부터 IPIC에 오일뱅크의 독점 배당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2억달러를 보전해 주겠다고 계약했다. 이 금액을 채우기 전까지는 보유 주식에 대해 배당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경영권 참여 권한도 포기하기로 했다.

또한 추후에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오일뱅크 지분 중 최대 20%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도 제공했다. 3년 후인 2006년 IPIC는 콜옵션을 행사, 오일뱅크 지분 20%를 매입해 지분율을 70%로 높였다.


그런데 2007년 들어 IPIC가 배당을 받아가지 않으면서 현대중공업과의 충돌이 생겼다. 이는 오일뱅크의 재무상황이 빠르게 호전되면서 IPIC가 일종의 '경영권 방어'에 나섰기 때문이다. 2억 달러의 배당금을 채우게 될 경우 현대중공업이 지분 30%에 대한 권한을 되찾는 것을 우려한 IPIC가 일종의 '반칙'을 저지른 것. 경영상 중요한 결정은 주주들의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돼 있다.

당시 현대중공업 측은 "IPIC가 고의적으로 배당을 안 받으면서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참여와 배당 재개를 막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간주했다.



이후 IPIC가 지분의 일부 매각을 추진하면서 분쟁이 확대됐다. 현대중공업은 "법적 분쟁이 발생한 상태에서는 지분매각을 할 수 없다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데 IPIC가 이를 무시하고 매각을 추진했다"며 지난해 3월께 ICC에 IPIC를 제소했다. 강제매각권을 행사해 IPIC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IPIC는 "현대오일뱅크의 매각을 막기 위해 현대중공업이 근거 없이 국제중재를 신청했다"며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므로 현대중공업은 남은 지분 30%도 우리에게 팔아야 한다"며 맞제소했다.

그러나 ICC가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 줌에 따라 IPIC는 지분 전량을 현대중공업 측에 넘겨야 하는 신세가 됐다.



주당 매각 가격은 양사의 합의에 의해 현재 시장가보다 낮게 결정된다. 정확한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이로 인한 차익이 25%(5000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중공업은 시세의 30%(6000억 원)가량 되는 이익을 더 누린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이번 승소에 대비해 두 달 전부터 단기차입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의 출처는 주요 시중은행들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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