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09.11.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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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대한민국 시장 1번지 '청계천 재테크'

◆세운상가협의회 안길수 회장
"IT 강국 초석 자부심…손님 발길 끊겨 어렵다


“국내 최초의 복합 전자상가 아닙니까. 역사적으로도 뜻깊은 곳인데 이걸 없앤다니요.”

세운상가협의회 안길수 회장의 목소리에선 깊은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세운상가에 터를 잡고 전자기기 부품 가게를 운영한 지 올해로 30년이 넘었다. 오랜 세월 이곳 세운상가와 흥망성쇠를 함께 해 왔지만 안 회장은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때는 없다”고 한숨 짓는다.



“80년대만 해도 세운상가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땐 사람이 하도 많아서 좁은 통로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 다니는 게 예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엔 손님이 없어요. 예전보다 70~80% 정도 떨어진 것 같아요.”

놀라서 되묻는다. 예전과 비교해 70~80% 정도에 불과하단 얘기일까, 아니면 정말 70~80%가 떨어져 20~30%의 수익만 내고 있다는 얘기일까. 한참을 침묵하던 안 회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후자”라고 답한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때만 해도 외국인 손님들도 눈에 많이 띄었어요. 그땐 여기저기 해외로 판로를 뚫는 일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 해외수출 판로도 다 빼앗기고, 국내 손님들도 없잖아요. 10년 넘게 이곳에서 터를 잡고 생활해 온 상인들인데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은 곳이 하나 둘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죠.”

사실 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상인들이 직접 돈을 모으고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육의전 체험 축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회장은 “돈은 들였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저는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IT 강국이 된 데 세운상가의 공이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컴퓨터가 들어왔을 때를 비롯해 최신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 모두 이곳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공부한 거 아닙니까.


저뿐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그런 자부심이 큽니다. 그러니까 손님이 자꾸 줄어들고 어려워도 떠나지 못하고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앞으로도 이곳을 계속 지키고 싶은데, 이런 역사가 깃든 곳을 없앤다고만 하니….”

안 회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고개를 떨궜다.



◆먹자골목 원조 횟집 박원조 할머니
"40년 밥 먹고 살게 해준 터전이야"


ⓒ선승표 기자ⓒ선승표 기자


광장시장 먹자골목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광장시장 역사는 이분께 물어보라”며 데려간 곳이 ‘원조횟집’이었다. 2평도 안 되는 조그만 노점 가운데서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는 박원조(가명) 할머니. 40년 전 지금처럼 좋은 길이 아니라 질퍽질퍽 거리는 진흙땅이었던 시절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할머니를 중심으로 먹자골목이 형성됐다고 하니 그야말로 원조 중의 원조인 셈이다.

“예전에는 여기 먹자골목이 다 청바지 골목이었어. 청바지 사려면 모두 이곳에 오고, 시집보내려고 한복 사려면 또 이곳에 오고.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내가 여기서 이렇게 장사하면 도통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 얼굴도 안 보일 정도였으니까.”



잠시 옛 생각에 잠긴 듯하던 할머니가 “그런데 요즘엔 내가 이렇게 수다 떨 시간도 있고 손님이 많이 줄었지”하며 아쉬움에 잠긴다. 그래도 다른 상인들에 비하면 먹자골목은 사정이 낫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다.

“청계천 복원된 이후로 우리는 덕을 좀 봤어. 사람들이 나들이 나왔다가 가볍게 한잔 하고 가기 딱 좋잖아.” 요즘엔 외국 손님도 늘어서 일본어도 곧잘 한다. 손님 모으고 장사하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라는 게 시원시원한 할머니의 설명.

“여기 장사하는 사람들 다 30년, 40년 한 사람들이야. 장사하는 품목도 바뀌고 세월이 변했어도 모두 여기서 자식새끼 키운 사람들이잖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했던 옛날이 물론 좋았지만, 그래도 지금껏 살아 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지 뭐. 이 만큼 모자람 없이 밥 벌어 먹고 살게 해 준 터전이니까, 항상 고맙지 뭐 별 거 있나.”



◆동대문 지게꾼
"우리가 바빠야 동대문이 제대로 돌아가지"


ⓒ선승표 기자ⓒ선승표 기자
전태일 동상이 있는 버들다리는 동대문패션종합시장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이 중심지임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징표. 동대문을 통해 오고 가는 물건의 운반을 책임지고 있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트럭들이다. 그런데 그 사이로 특이한 장면이 눈에 띈다. 원단을 두겹 세겹 지게에 쌓아 오토바이와 트럭에 쉴 새 없이 나르는 지게꾼 아저씨들. 동대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 셈이다.

이곳에서 지게 일을 시작한 지 30년이 됐다는 김모 아저씨는 인터뷰를 굉장히 조심스럽고 꺼려했다. “힘으로 먹고 사는 일인데 해 줄 말이 뭐가 있냐”며 손사래 치는 아저씨에게 거듭 부탁을 한 끝에 기자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 중에도 자꾸만 다리 부분을 만지는 아저씨의 모습에 물어보니 아저씨가 드디어 말을 시작한다.

“일하다 얻은 병이지 뭐. 하루에 50~60kg 되는 무게를 지고 가게를 4층까지 오른다고 생각해봐. 이 일 하는 사람치고 병 없는 사람 없을 걸. 그나마도 일이 잘 되면 좋은데 요즘엔 일거리가 없어서”

한숨을 쉬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사정은 이렇다. 동대문 패션 가게들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운송비라도 줄여야 한다는 마음에 창고를 운반하기 좋은 곳으로 옮기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덩달아 지게꾼 아저씨들의 일거리도 떨어져 나간 것이다.



“새벽부터 찬바람 쐬고 나와서 밤에 해 떨어질 때까지 일을 기다리는데 요즘엔 쉬는 시간이 많아. 무거운 짐 나르면 힘드니까 원래도 한번 일 갖다 오면 막걸리 마시고 오래 쉬는 일이지만, 요즘엔 점차 쉬는 때가 늘어나니 속상할 수밖에. 층수가 높으면 가격이 더 치는데 그것도 500원 정도 차이고. 먹고 살기 어려운 건 다 매한가지지.”

아저씨들의 어려움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게꾼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땐 5년만 지게 지고 그만둬야지, 10년만 해야지 그랬는데 지금까지 하잖아. 동료들 대부분이 비슷해.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새로 시작하는 게 쉬워야 말이지. 그래도 나이 드니까 하나 둘씩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이 일을 새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힘쓰는 일 하고 싶나.”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래도 우리가 있어야 동대문이 제대로 돌아가지. 우리가 바빠지면 그만큼 동대문이 활기차고 바빠진다는 얘기니까. 우리 힘든 거야 뭐 늘 하던 일인데. 일이 많아지면 무조건 좋은 거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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