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과는 다른 '정책금융 지원' 모델 만들것"

대담=정희경 부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정리=정진우 기자 2009.11.1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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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초대 사장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진행했던 정책금융의 관행을 깨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천할 겁니다."

최근 출범한 정책금융공사의 초대 사령탑, 유재한 사장의 각오는 남달랐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잠시 외도를 했던 그가 최고경영자(CEO) 직함을 쓰게 된 것은 2007년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이어 2번째다. 대개 회사 이름에 '금융'이나 '공사'가 들어가면 '신의 직장'으로 분류된다. 두 단어가 모두 포함된 자리를 2차례 맡았으니 부러움의 대상이 될 법 하다. 유 사장은 이런 시각에 "큰 영광"이라고 웃어 넘기면서 "정책금융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공사는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산업은행이 보유한 15조 원 규모의 공기업 주식을 넘겨받아 자산 28조원 규모로 설립됐다. 또한 하이닉스나 현대건설 등 굵직한 기업은 물론 글로벌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산은금융지주의 지분도 갖고 있다. 정부나 금융시장, 재계 등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관이다. 취임 후 조직 정비에 여념이 없는 유 사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 정책금융공사의 핵심 업무는 무엇인가요.

▶ 회사 이름 그대로 '정책금융'입니다. 종전 산업은행이 했던 정책금융 업무와 정부에서 추진하는 각종 금융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중소기업 지원도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 뿐 아니라 가능성 있는 기업들을 발굴하고 육성할 계획입니다. 신성장동력 산업도 적극 지원합니다.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산업들이 있죠. 전기자동차, 로봇산업, 신소재 등 아직 기술에 대한 확신이 없는 기업들을 찾아 지원할 계획입니다. 상시적인 기능은 아니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가 닥치면 금융시장 안정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2의 산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들립니다.

▶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전 산업은행과 분명히 다를 겁니다. 산은이 비판을 받았던 것은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시중은행이나 민간 금융회사와 경쟁을 벌인 때문 아닌가요. 그런데 공사는 법에 경쟁금리 조항이 명문화돼 있습니다. 이전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바로 법 위반이 되는 셈이죠. 지금 공사 나름의 (정책금융 지원)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시중은행과 경쟁하지 않고 시중은행이 하지 못하는 것을 과감히 할 것입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계획입니다. 곧 자리가 잡히면 제2의 산은이라는 말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과 업무 중복은 없나요.


▶ 설립 준비 당시 그런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수요자들의 시각은 다를 겁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지원군이 또 하나 있는 게 좋은 것 아닌가요. 물론 중복 지원이 있으면 국가 전체로 비효율적일 겁니다. 우리와 신보·기본의 지원 방식은 다릅니다. 공사는 자금을 공급하고 신보나 기보는 보증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은행 등과 함께 지원하되 지원금액이 전체의 50%를 넘지 않게 할 방침입니다. 접근 방식도 다르고, 실제 지원 대상 기업도 차별화될 겁니다.

ⓒ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 온렌딩(전대) 방식의 지원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 온렌딩은 공사가 자금을 대고 은행들이 심사를 거쳐 집행하는 방식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지방은행 6곳과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지방은행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또한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과도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시중은행과는 올해 논의를 끝내고 내년 초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만일 손실이 발생하면 사전에 은행들과 정한 부담 비율에 따라 나눌 예정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은 금리를 더 받고 좋은 곳은 덜 받는 시스템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모니터링도 강화할 방침입니다.

-최근 채권 발행에 성공했죠.

▶ 이달 초에 5년 물 원화표시 정책금융채권(정금채)을 500억 원 규모로 발행했습니다. 금리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보다 낮고 예금보험공사채권(예금채)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산은보다 신용도가 좋다는 것이죠. (공사는 3대 국제 신용평가기관에서 외화표시 채권의 신용등급을 정부와 같은 수준으로 받았다.) 앞으로 발행 물량은 늘어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출범과 동시에 산은에서 10조원 규모의 산금채를 받았는데 만기가 되면 갚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한 리볼빙은 정금채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산금채 대환과 운영자금 용도를 포함하면 내년 정금채 발행 물량은 15조∼16조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력은 충분한가요.

▶ 아직 공사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인력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원을 크게 늘릴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소수 정예의 분석가들을 통해 상당한 실적을 내도록 만들 계획입니다. 집행과 분석 업무를 구분해 적정규모로 공사를 운영하는 방안을 강구중입니다.

-하이닉스가 효성에 매각되나요.

▶ 솔직히 하이닉스 매각에 대해선 (공사가)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출범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 주식을 6.2% 받았지만 지금으로선 우리가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닙니다. 대외 접촉 창구는 외환은행입니다. 외환은행을 비롯해 채권단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채권단이 늦춰준 예비 인수제안서 제출시한이 아직 남아 있지 않나요. 그 후 매각 방향이 일단락되면 이야기가 나올 지 모르겠습니다만 원칙적으로 채권단이 결정할 사항입니다.

- 현대건설 등의 매각 일정은 어떻습니까.

▶ 우리는 주식투자 기관이 아닙니다. 정상화된 기업은 우리가 갖고 있을 필요가 없죠. 정상화된 기업의 지분은 지체 없이 판다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다만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면 처리하기 곤란해 상황에 따라 할 겁니다. 기업별로 시기를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격이 최우선 조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라면 신중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팔 수는 없습니다. 또한 능력 있는 수요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찾아 나설 수도 있습니다. 정부와 조율해 그런 부문을 신경 쓸 계획입니다. 내년에 현대건설이나 대우인터내셔널 등 다른 기업들도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처리할 예정입니다.

- 산은금융지주 민영화는.

▶ 정부가 산은지주 지분 100%를 공사에 출자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배당을 받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산은지주 지분은 장기적으로 매각됩니다. 산은의 경우 기업금융이 강점인데 반해 수신기능이 약합니다.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은지주 지분 매각은 기관투자가, 은행, 외국계 모든 투자자들이 고려 대상입니다. 산은지주가 빨리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민영화가 이뤄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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