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받은 충격은 컸다.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현실성 없는 방안이라고 반대했다. 승리를 확신했던 탓도 적잖았다. 충청표심에 대한 우려는 이듬해 수도이전특별법 국회 합의 통과로 나타났다. 당 지도부는 반대 의원을 만나 일일이 설득했다. 찬성 167표, 반대 13표, 기권 14표. 총선을 4개월여 앞둔 때였다.
한나라당이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으로 갈리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었다. 당 지도부의 세종시법 처리 합의 결정에 수도권 의원들과 비주류가 반발했다. 안상수·이재오·전재희 의원이 농성에 들어갔다. 중심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언론에선 같은 해 여름이 지나면서 '친이·친박'이란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이는 정운찬 국무총리였다. 정 총리는 지난 9월 총리 지명을 수락하며 수정론을 폈다. 정치권은 "세종시가 유령도시가 되지 않게 하려면 교육·과학·기업 등 자족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정 총리의 발언에 주목했다. 이 대통령이 4년 전 세종시법 처리에 반대하며 낸 대안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정 총리로부터 세종시 수정안 로드맵을 보고받으며 수정 불가피론을 공식화했다.
친이계의 고민은 역시 충청민심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대통령 임기 후반 조기 레임덕에 시달릴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다. "세종시가 안 되면 혁신도시도 좌초될 것"이란 비판도 날카롭다. 10개 혁신도시는 전국 지방민심이 달린 문제다. 충청도에 국한된 세종시에 비할 게 아니다. 국토균형발전이란 대의와도 맞닿아 있다. 모두 노 전 대통령이 엮어놓은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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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는 이 점을 파고든다.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도 더한다. 친박 유정복 의원은 4일 라디오 방송에서 "여권 일각에서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은 법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은가 안 지키는 것이 좋은가를 묻는 투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과의 승부 이전에 집안 교통정리부터 마쳐야 할 한나라당이다. 충청민심이 등을 돌리면 당내 승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일단 꺼내든 '칼'을 성과 없이 집어넣을 수도 없다. 친이계 일각에서 "노무현 프레임에 갇혔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