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세종대왕께 죄스런 오역, 뻔뻔한 서울시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09.11.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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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세종대왕께 죄스런 오역, 뻔뻔한 서울시


'교체는 했지만 잘못된 건 아니다?'

3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영어안내문을 일부 교체했다. 머니투데이가 10월 28일 '한글'을 '한국어(our national language)'로 오역한 것을 지적한 보도를 낸 지 6일 만이다.

"랭귀지(language)가 잘못된 표현은 아니"라고 주장해온 서울시로서는 의외로 발 빠른 대처다. '내셔널 랭귀지(national language)'라는 동판의 글자를 떼어내고 '코리안 캐릭터스(Korean characters)'를 새로 붙여놨다.



교체는 오류를 시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여전히 같은 주장만 되풀이 했다. 3일 저녁 동판의 글자를 바꾸고서도 "계속 검토중"이라는 답변이다. 첫 취재 이래 같은 답변만 반복하면서 밤새 '행동'에 옮긴 것이다.

서울시는 "외국 관광객이 이해하기 쉽게 상식선에서 '랭귀지'를 쓴 것"이라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 해명은 어이가 없다. 영어의 기본만 배워도 'language'는 말, 'character'는 문자의 의미가 강하다는 것을 안다.



학계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언어학 박사인 전종호 교수(서울대 언어학과)는 "통상 문자를 제외한 구어를 '랭귀지'로 부른다"고 했다. 영국 언어학 박사인 이주희 교수(경희대 국문과)도 "언어(language)와 표기체계(writing system)는 엄연히 다른데, 분명 잘못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자'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알파벳(alphabet), 캐릭터(character), 리튼 랭귀지(written language)' 등을 두고 구태여 광범위한 의미인 '랭귀지'를 쓸 이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안내문 번역 과정에 이 같은 논의 자체가 없었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최대한 적확하게 설명해야할 안내문을 관련 전문가의 확인 작업도 거치지 않고 번역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의뢰를 받아 번역을 진행한 업체 '랭스테크'도 "표현이 잘못됐다고 말하긴 힘들다"는 뻔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상식'을 강조하던 서울시는 결국 세금을 들여 마련한 안내문을 교체했다. '못내 교체는 했지만 잘못된 것 아니다'는 서울시의 변명은 헌법재판소 뺨치는 '처세'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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