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절대 못잊고 못버리게 하는 아이디어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09.10.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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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조경전문가의 '싹트는 명함', 오른쪽은 부채회수 대리인의 '공포의 명함'.↑ 왼쪽은 조경전문가의 '싹트는 명함', 오른쪽은 부채회수 대리인의 '공포의 명함'.


당신은 건넨 지 1초도 되지 않아 지갑으로 직행하는 명함을 가졌는가. 아니면 받는 순간 화제가 되고 기억에 남는 기특한 명함을 가졌는가.

만화가 박광수씨는 최근 광고·디자인 회사 '플라잉스푼'을 열었다. 박 씨가 손수 제작한 명함은 '보딩패스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 모양이다. 뜯어낸 왼쪽 점선까지 흉내 낸 명함에는 이름, 직책, 주소, 전화번호 등과 함께 게이트 번호가 찍혀 있다.



뒷면은 비행기 탑승 시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 보딩패스의 형식을 재치 있게 차용했다. 대신 '디자인은 문제해결과 창의력'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내용으로 담았다. 명함을 받아든 이들은 '왜 보딩패스를 내밀까' 하다 이내 알아차리곤 재미있어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디자인 명함' 이 단연 인기다. 초면에 어색한 사이를 누그러뜨리는 소재가 되거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제몫을 톡톡히 해낸다. '발명품'쯤으로 불려도 손색없는 이색 명함은 아직까지는 해외 사례가 더 풍부하다.



영국 한 조경전문가의 명함은 '두고두고 고객을 놀라게 하는' 콘셉트다. 명함을 받은 지 4일이 지나면 새싹이 트기 때문. 명함을 지갑에 꽂아뒀던 사람들은 싹이 트면 신기해 다시 관심을 가진다. 명함 화분을 보고 집 정원 관리를 맡겨달라는 위트가 돋보인다.

한 결혼생활 컨설팅 업체는 명함에 '따뜻한 마음'을 담았다. 다툼으로 파경 직전에 놓인 부부를 도와준다는 의미로 절반쯤 찢어진 자국이 난 명함에 테이프가 붙어있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예다.
↑ 왼쪽은 결혼생활 컨설팅 업체의 '화해의 명함', 오른쪽은 'CEO 명패 명함'.↑ 왼쪽은 결혼생활 컨설팅 업체의 '화해의 명함', 오른쪽은 'CEO 명패 명함'.
외부 회의나 미팅이 잦은 CEO를 위한 '명패 명함'도 등장했다. 평소엔 일반 명함과 다름없지만 공식 석상에서 절반을 접어 올려 두면 이름과 직책이 상대방의 시선에 맞춰진다. 실용성을 강조한 아이디어다.

미국의 한 부채회수 대리인의 명함에는 손마디가 찍힌 엑스레이가 담겨 있다. 이는 '나는 네가 빌린 돈을 알고 있다'는 식의 무시무시한 메시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풍선을 불면 명함 정보가 보이는 흉부외과 전문의의 '풍선 명함'도 기발하다.


이처럼 디자인 명함은 직업과 관련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고객 서비스' 기능까지 첨가한 명함도 인기다.
↑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용실 '실핀 명함', 네일아트숍 '손가락 명함', 먹어 없애는 '땅콩 명함', 노인층을 위한' 돋보기 명함'.↑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용실 '실핀 명함', 네일아트숍 '손가락 명함', 먹어 없애는 '땅콩 명함', 노인층을 위한' 돋보기 명함'.
한 네일아트숍에서는 매니큐어가 끝나고 매장을 떠나는 고객의 손가락에 명함을 끼워 준다. 완벽히 마르지 않은 매니큐어가 손가락끼리 부딪혀 벗겨지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다.

고객에 '명함 선물'을 건네는 일본 헤어숍도 있다. 언뜻 보기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한 명함 속 소녀의 머리는 '실핀'으로 돼 있다. 별도로 구입하기 번거로운 실핀을 명함에 끼워 고객에 제공하는 서비스는 인기를 끌지 않을 수 없다.

이 밖에 이색 명함으로 동전으로 긁어야 보이는 복권 명함, 노인층을 위한 돋보기 명함 등도 있다. 어차피 보지도 않고 버려지는 명함을 비꼬는 '먹어서 없애는 명함'도 등장했다. 땅콩, 껌, 과자류에 새긴 명함은 받는 즉시 먹어 버리라는 유머러스한 발상으로 인기다.

한편 신분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 국정원 요원에게도 명함은 있다. 산업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한 국정원 요원의 명함에는 달랑 이름과 전화번호만이 적혀 있다. 뒷면은 백지 상태. 직종도 주소도 공개할 수 없지만 중요한 연락을 위해 건넨다는 보기 드문 명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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