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매' 외고, 이번에는 수술대 오를까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9.10.1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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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등을 통해 '외국어고 폐지론'에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외고들이 '입학전형 개선안'을 내놓으며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외고들은 입시전형 개선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서는 폐지, 또는 자율형사립고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대원외고 "영어듣기폐지, 지역균형선발" = 전국 30여개 외고의 좌장 격인 서울 대원외고는 지난 17일 영어듣기 시험 등 사교육 유발 지적을 받아온 입시전형을 모두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1학년도 입시부터 영어듣기 시험을 없애고 학교생활부와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것.

또 서울대가 실시하고 있는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학생을 골고루 뽑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정원의 35%는 외국어·예체능 우수자,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뽑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원외고뿐만 아니라 서울 및 지방의 다른 외고들도 이번 만큼은 '외고 폐지론'을 쉽게 비껴가기 어렵다고 보고 2011학년도 입시부터 전형방법을 크게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고 입시개선안 발표, 왜? = 외고들이 이번에 입시전형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여야 구분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외고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여야 의원들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틈 날 때마다 외고가 어학영재 양성이라는 설립목적과 거리가 멀고 고액 사교육비를 유발하는 입시 명문고로 변질됐다며 외고 개선을 요구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들 가운데 '외고 수술'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고,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자율고로 전환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혀놓은 상태다. 외고 폐지론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국감의 '단골 메뉴'였지만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 야당 의원들보다 여당 의원들이 더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서민·중산층 살리기'를 위해 사교육비 경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고입·대입 제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사교육비 경감은 저출산율 해소 등 미래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 형성돼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고, 겉은 '수용' 속은 '반발' = 외고들이 정치권의 압력에 떠밀리듯 입시 개선안을 내놓긴 했지만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폐지론이나 자율고 전환론을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제도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입시전형 개선으로 보완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최원호 대원외고 교장은 "이렇게 키우는 데 20년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학교를 없애려는 것이냐"며 '외고 폐지론'에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외국어가 예전에는 특기였지만 이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다 필요한 시대 아니냐"고 되묻고 "외고 폐지는 학교선택권 확대, 수월성 교육 강화, 교육경쟁력 강화라는 정부 정책 목표와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자율고 전환론에 대해서도 외고 교장들은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한다는 보장이 없고 세계적인 교육경쟁력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자율고 전환에 힘 실릴 듯 = 정치권에서 '외고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외고들도 일정 부분 개선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현재의 외고 운영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변화의 폭이 입시전형 변화 정도에 머물지, 아니면 자율고 전환이나 폐지까지 갈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궤도에서 한참 이탈한 외고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다수이긴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마녀사냥식' 접근법보다 외고들의 주장처럼 잘 하는 학교는 더 잘 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 교과부는 연말까지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장·차관 사이에도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되고 있어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이번 국감에서 "외고를 갑자기 자율고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반면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정부는 외고를 일반고로 '하향평준화'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시도는 '상향평준화'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며 정치권의 자율고 전환 노력에 지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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