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하이에나' 검은 헤지펀드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2009.10.13 09:41
글자크기

[검은 헤지펀드]<上-1> "자금쾌척, 그건 毒"

- 자금난 상장사 주식담보 지원
- 영문계약서 400여개 특약조항
- BW로 원금과 이자 챙기고 신주인수권으로 매도차익까지


"첫 유혹은 달콤했습니다. 주식만 담보로 주면 거액의 돈을 쾌척하니까요. 그러나 이 헤지펀드는 기업의 성공을 원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실수와 부실을 먹고 삽니다" - A사 전 부사장.



"한국증시의 '하이에나' 같은 존재죠. 어려운 기업들의 돈을 뜯어가는 다양한 수법들이 있는데, 걸리면 헤어나기 힘듭니다" -B사 이사.

지난 2007년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A사는 수소문 끝에 독일계 헤지펀드 '피터벡 & 파트너스'(Peter Beck & Partners)'대리인(에이전트)'을 만났다. 국내기관들은 부동산 등 자산담보가 없으면 투자를 받을 수 없지만, 이들 헤지펀드들은 달랐다. 기본적인 금리조건 등을 적은 A4 1장짜리 제안서를 제시하며 대주주 주식만 담보로 잡히면 1000만달러 자금을 쾌척해주겠다고 했다.



A사는 유로시장 사모 분리형 BW를 발행했고, 피터벡은 10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자했다. 계약 당일 헤지펀드는 두툼한 영문 계약서를 가져왔고, A사 대표는 '큰 차이 없다'는 말을 믿고 선뜻 계약했다. 하지만 이 영문계약서에 400여개의 무시무시한 특약조항들이 숨어있다는 걸 확인할 시간도 능력도 없었다.

한 헤지펀드의 BW투자계약서. 두툼한 영문계약서에서는 수많은 독소조항들이 '옵션'으로 포함돼 있고, 이 조항에 걸릴 경우 기한이익상실(EOD)로 사채 원금과 막대한 이자를 한꺼번에 물어야한다. 상장사들은 EOD를 막기 위해서 페널티를 물거나 헤지펀드의 대주요청 등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상장사 대부분이 계약을 사인하는 당일날 이 두툼한 영문계약서를 받게 된다. <br>
한 헤지펀드의 BW투자계약서. 두툼한 영문계약서에서는 수많은 독소조항들이 '옵션'으로 포함돼 있고, 이 조항에 걸릴 경우 기한이익상실(EOD)로 사채 원금과 막대한 이자를 한꺼번에 물어야한다. 상장사들은 EOD를 막기 위해서 페널티를 물거나 헤지펀드의 대주요청 등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상장사 대부분이 계약을 사인하는 당일날 이 두툼한 영문계약서를 받게 된다.


A사는 이후로 피터벡의 허락 없이는 경영권 매각·증자·대표변경 등 중요한 경영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주인수권(워런트)은 끊임없이 늘어나며 경영진을 옭아맸다. 일명 '황금BW'조항으로 전환가액이 재조정(리픽싱)될 수 있는 하한을 허물었고 감자를 해도 전환가액은 그대로 두도록 해서 이중삼중으로 이익을 보는 장치를 걸었다.

B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B사는 2007년 6월 미국계 헤지펀드 이볼루션 캐피탈 매니지먼트(Evolution Capital Management)에 1500만달러 규모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이미 약 200만주의 대주주 주식을 담보로 잡은 이볼루션은 이런저런 특약조항을 빌미로 B사 대주주 주식을 '대주'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이볼루션은 대주한 주식을 모두 팔아 연일 하한가를 만들고 전환가액을 낮게 조정, 차액을 취했다.


투자유치 1년 후. A사와 B사는 피터벡과 이볼루션에게 각각 1000만달러, 1500만달러의 원금과 연 5% 전후의 이자까지 상환했다. 비로소 BW중 채권은 소멸됐지만 신주인수권이라는 '큰 산'이 남았다. 피터벡과 이볼루션은 이미 절반가량의 신주인수권을 장내에서 매도해 차익을 올렸다. 하지만 숱한 전환가액 조정 때문에 여전히 경영권을 좌우할 만한 막대한 물량의 신주인수권을 보유하고 있다.

주식과 회사채를 절묘하게 활용하는 '검은 헤지펀드'의 고도 전략에 수많은 상장사들과 투자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자금사정이 어렵고,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을 대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만 투자해 수익을 올린다.



어려운 기업에 투자해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는 탓에 '저승사자'라는 닉네임도 갖고 있다. 국내 금융사가 외면한 기업에 거액의 자금을 쾌척하는 대신 수많은 독소조항들을 '지뢰'처럼 깔아 '등골'이 휘도록 뽑아간다. 대형 법률회사를 끼고 한국 법과 계약관계를 너무 잘 이용해 '당해도 법으로 싸워 이길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피터벡, 이볼루션 외에도 DKR, OZ,오펜하이머 등도 국내서 활약하고 있다. 피터벡의 올해 하반기 공시만 봐도 투자한 회사가 18개에 이른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