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우리 은행을 프리미어리그로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국장대우 금융부장 2009.10.0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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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계 금융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가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의 하나인 리버풀과 유니폼 후원계약을 했다. 지원규모는 유럽 최고 수준인 연간 2000만파운드(400억원)로, 삼성의 첼시 후원액(1250만파운드)을 능가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 은행도 프리미어리그에 이름을 내걸 수 있을까. 지난해 기본자본 기준으로 보면 스탠다드차타드는 세계 50위 은행이다. 국민은행과 우리금융지주가 각각 74, 82위에 오른 만큼 다소 무리하는 경우 금융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의 축구무대를 통해 유럽과 중동·아프리카 지역까지 우리 은행의 이름을 알릴 수는 있다.

문제는 현지 영업기반이 스탠다드차타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 유명 축구팀을 후원하더라도 브랜드 인지도를 그만큼 높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현재 바클레이는 프리미어리그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뉴욕양키스 야구팀을 각각 후원하고, 스페인의 양대 은행 중 하나인 산탄데르는 지난해 포뮬러원(F1) 월드챔피언 루이스해밀턴을 지원해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의 인기 스포츠팀과 인연을 맺은 은행들은 세계적으로 성장한 곳이다. 이들의 제휴는 국내 은행의 현 주소를 돌아보게 만든다.

'세계 100대 은행'에 신한금융지주(91위)를 포함해 고작 3곳을 올린 국내 은행권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경제규모나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국격'에 비춰 은행은 국제무대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다. 우리 은행이 전무한 '세계 25대 은행'에 중국은 4개, 일본은 3개 포함돼 있다. '1000대 은행'으로 범위를 넓혀보더라도 국내 은행수는 10개로 미국(159개)이나 일본(97개)과 비교하기 어렵다.

국내 은행의 위상이 높아지지 못한 데는 그간 은행 스스로 노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당국이나 국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이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은행을 기업의 지원기관쯤으로 간주하거나 이자놀이만 하는 회사로 여기는 시각이 대표적이며, 이로 인해 규제가 당연시돼왔다. 외환위기 당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최근 금융위기에서 은행의 중요성이 확인됐는데도 이를 격하하는 분위기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같다. 이런 여건에서는 은행이 아무리 공을 들이더라도 국제무대에 제대로 서기 어렵다.


은행은 한 국가의 경제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된 지난해 10월 이후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경제를 대외부채와 외환보유액, 은행의 건전성 등 주로 3가지 잣대로 점검했다. 이들 지표에 이상이 없으면 웬만한 '외풍'은 견뎌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단기외채 규모가 크고 은행의 예대율이 너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환율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등 당국의 선제적인 조치 속에 은행의 탄탄함이 확인되면서 경제나 금융시장이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국면에 들어갔다. 은행들이 10년 전 수준의 취약성을 보였다면 그 결과는 끔찍했을 것이다.



최근 은행권에서 인수·합병(M&A) 논의가 재개됐다. 이번 인수 움직임은 단순히 몸집을 키워 국내 1위를 차지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산업, 나아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외형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는 은행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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