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헵번, 티파니 & 샴페인

김성동 한국와인협회 부회장 2009.10.0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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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와인이야기]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편집자주 '와인 레이디'로 불리는 김성동 한국와인협회 부회장이 영화 속에 녹아있는 음식 문화의 동반자인 와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인생의 깊이와 삶에 대한 사랑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오드리헵번, 티파니 & 샴페인


뉴욕 맨해튼의 아무도 없는 움직임이 멈춘 이른 아침.

세상의 정적을 뚫고 노란색 택시가 도로 위에 조용히 멈춘다. 멀리서 헨리 멘시니가 연주하는 '문리버'의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검은 롱 드레스를 입고 진주 목걸이로 목을 휘감은 멋진 여성이 택시에서 사뿐히 내려선다. 그 녀의 머리카락에 몇 줄기 블리치가 염색되어 휘감아 올려 몇 줄기 노란 머리카락이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여자의 얼굴을 검은 선글라스로 가렸지만 회색의 도시에서 드러나는 광채를 감출 수는 없다.

그녀가 내려 선 곳은 1837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뉴욕 5번가 애비뉴에 개업한 보석점으로 뉴욕 최고의 명소이다. 모든 것이 멈춘 화려한 보석상 앞에 그녀는 서서 진열장에 전시된 보석을 쳐다본다. 그 때까지 그녀의 매력에 빠져 미쳐 보이지 않던 구겨진 종이봉투가 눈에 띈다.



봉투 안에 그녀의 가녀린 손이 들어간다. 그녀는 사각형의 데니시 패스트리를 꺼내어 조금씩 씹는다. 이어서 종이컵을 꺼내어 뚜껑을 봉투에 넣고 커피를 조금씩 마신다. 이윽고 그녀가 티파니에서 몸을 돌려 조용한 도시로 발길을 돌리자 하나 둘씩 차와 사람의 움직임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어느덧 그녀는 도시 속으로 사라진다.

이 영화는 1958년 트루먼 카포티의 소설로 해마다 약 3만 부가 팔리는 스테디셀러이다. 2008년 11월에는 50주년 기념 특별판이 출간되었다. 블레이크 에드워드 감독이 1961년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받았고 오드리 헵번이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이 영화의 패션은 검정 색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이너 지방시의 디자인의 세련미와 우아함으로 극찬을 받았다. 지방시는 오드리 햅번과 약혼한 적이 있었던 평생의 친구이다.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의 패션은 끊임없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행복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녀의 검은 드레스는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 80만 달러에 팔렸고 지방시는 전액을 인도 캘커타의 빈민을 위한 단체 '시티오브조이에이드(City Of Joy Aid)'에 기부했다. 유네스코에서 빈자를 위한 봉사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친 오드리 헵번, 그녀의 드레스가 멋진 일을 한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티파니 앞에서 아침을 먹은 여성은 할리 골라이틀리(오드리 헵번)이다. 할리는 텍사스의 시골에서 14살에 늙은이와 결혼하였다가 뉴욕으로 도망온 촌뜨기다. 그녀는 촌스러운 이름과 말투를 고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부자들의 데이트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여성이다. 할리는 남자들에게 돈을 벌지만 그들을 ‘쥐’라고 부르며 경멸하고 그들은 할리를 ‘진짜 가짜’라고 부른다. 거짓 인생을 사는 그녀는 언젠가 티파니와 같은 멋진 집을 갖는 것이 소망인 신분상승의 꿈을 꾼다.


티파니는 거대한 도시에서 그녀가 우울할 때마다 택시를 타고 방문하는 곳이다. 티파니는 언젠가 호화로운 생활을 할 것을 꿈꾸며 빵 한 조각을 먹으며 아침식사를 하는 곳이다. 이곳은 할리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신기루이며 오아시스이다. 할리는 혼자 살면서 거리에서 길을 잃은 고양이를 주어서 살게 되지만 티파니와 같은 집을 짓기 전까지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고양이(Cat)라고 부르고 있다.

할리의 아파트 위층에 말끔한 모습의 폴 바작(조지 페파드)가 이사온다. 가난한 작가 생활을 하는 그는 부유한 중년 여성이 얻어 준 아파트에서 그녀와 몰래 만나 깊은 관계를 갖는다. 그는 육체노동의 대가로 그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궁핍한 생활을 꾸려간다. 폴는 이미 ‘9 Lives’ 라는 9편의 단편 소설을 쓴 작가이다. 9 Lives는 서양 속담에 고양이는 무려 9개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할리의 이름 없는 고양이의 생명력이 대도시의 고독한 할리와 오버랩된다.



할리와 폴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할리는 매달마다 마약 밀매로 구속된 마피아 보스를 교도소로 면회 가서 일기예보를 전달하며 100달러를 번다. 그것은 조직의 암호를 전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 폴은 할리를 걱정하지만 세상의 일에 미숙한 할리는 천하태평으로 지낸다. 할리는 그녀가 쥐라고 부르는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티파니를 꿈꾸며 지낸다.

어느 날 하얀 목욕수건으로 머리를 묶은 할리가 창틀에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할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폴은 아래층의 그녀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본다.

♪ ♪ ♪ 달빛 흐르는 강은 아주 넓어. 언젠가 난 아주 멋지게 당신을 스치리라~
♪ ♪ ♪ 당신은 몽상가. 무정한 당신이여. 당신이 어디를 가든 나는 당신을 따르리~
♪ ♪ ♪ 두 방황자! 세상을 보러 가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볼 것이 있다네~
♪ ♪ ♪ 우리는 같은 무지개의 끝을 찾아 기다리네. 나의 진정한 친구~
♪ ♪ ♪ 달빛 흐르는 강과 나!



톡톡톡! 폴은 할리의 노래가 흐르며 타이프 라이터로 소설 ‘내 친구’를 써 내려간다. “아주 사랑스럽고 겁 많은 소녀가 이름없는 고양이와 살고 있었다…” 로 소설은 시작된다.

사랑스럽고 겁 많은 할리는 수시로 현관 열쇠를 잃어버리고 시끄러운 파티를 벌이며 이웃의 일본인을 괴롭힌다. 이 역할은 미키 루니가 뻐드렁니와 노란색으로 얼굴을 분장하고 불만투성이의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사진가를 연기했다. 미키 루니의 모습에서 아시아인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영화 45주년 기념행사에서 제작자측은 아시아인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담게 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할리가 위스키와 칵테일을 즐기며 부자를 낚기 위해 분주한 생활을 하는 사이에 드디어 폴의 작품이 인정을 받게 되어 폴과 할리는 함께 샴페인을 열며 자축한다. 샴페인의 기포가 포물선을 그리며 그들의 사랑, 섹스를 상징한다.



그들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기로 하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할리는 언제나 문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던 티파니에 폴과 함께 들어간다. 폴은 원고료로 할리의 선물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10달러만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둘은 티파니에서 10달러로 아무 것도 살 수 없음을 알고 과자 봉지에서 선물로 나온 가짜 반지에 그들의 이니셜을 새기로 하고 주문을 한다.

폴은 할리를 사랑하게 되어 후원자인 부유한 중년 여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아파트를 떠난다. 그 후로 폴은 여러 작품을 쓰며 할리의 사랑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느 날 할리가 폴을 초대하고 냉장고에서 로제 와인을 꺼내어 와인을 개봉하며 그녀가 결혼을 하러 다음 날 브라질로 떠나는 것을 알린다. 그녀의 들뜬 마음이 핑크색 와인에 담겨있다.

할리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폴에게 뉴욕을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브라질에서의 화려하게 펼쳐진 삶을 동경한다. 그날 저녁 마피아의 연락책이었던 할리의 행적이 드러나며 그녀는 체포된다. 할리는 폴의 도움으로 경찰서에서 나오게 된다.



폴은 할리의 아파트에서 고양이와 짐을 챙겨 거처를 옮기는 것을 돕는다. 폴과 함께 택시를 탄 후에 할리는 브라질의 부자와 결혼하는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된다. 화가 난 할리는 비가 몹시 오는 할렘가의 쓰레기가 쌓인 길거리에 고양이를 집어 던진다. “여기는 어떠니? 너 같은 애가 살만한 곳이지 않니?” 라며 소리친다.

할리에게 실망한 폴은 주머니에서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티파니에서 이니셜을 새긴 반지를 그녀에게 주고 택시에서 내린다. ‘진짜 가짜’의 삶을 살던 할리는 보석함을 열고 반지를 꺼내어 떨리는 손으로 손가락에 끼어 넣는다. 그리고 ‘진짜 진짜’의 삶을 찾아 폴과 고양이가 있는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로 내려선다.

할리는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Cat! Cat! Cat!)” 하며 빗속을 헤맨다. 쓰레기 더미 사이의 빈 나무상자 속에 숨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할리는 오열한다. 헐벗고 길잃은 빗속의 고양이에게서 할리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할리는 고양이를 안아서 소중하게 코트 안에 넣어 비를 막아준다. 그리고 할리는 폴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겨 키스한다.



할리는 물을 아주 싫어하는 고양이를 빗속에 던지며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할리를 돈으로 살 수 있었던 모든 남자가 ‘쥐’였지만 할리는 쥐를 잡는 영민한 고양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고양이는 9개의 생명을 가졌으나 지나친 호기심은 9개의 목숨도 모자란다(Curiosity kills the Cat)는 속담이 있다. 할리는 이제 환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할리는 가짜 진짜의 모습을 벗어 던진다. 할리는 세상 앞에 당당히 맞서서 자신을 보인다.

할리의 ‘진짜 진짜’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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