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시평] 나영아!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

머니투데이 최남수 MTN 보도본부장 2009.10.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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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아!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나영이 얘길 듣고 아저씨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니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8살 이면 해맑은 영혼을 가지고 하나하나 세상을 배워 갈 어린 나이인데 넌 가장 악한 걸 직면해야 했구나. 뭐라고 얘기해도 용서되지 않을, 용납할 수 없는 어른의 변태적 욕구가 아직 피어나 보지도 못한 너의 순수함을 짓밟고 꺾어 놓아 버렸으니... 무슨 위로의 말을, 어떤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교 길에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집으로 향했을 나영이를 생각하면 그 참혹했을 순간을 지울 수 만 있다면 몇 날 몇 일이 걸리더라도 한 점의 흔적도 남지 않게 지워 주고 싶단다. 소꿉장난하며 공기 돌 놀이하며 숨바꼭질하며 계속 그렇게 싱싱하고 푸른 모습으로 자랄 수 있도록. 어른을 친구로, 보호자로 여기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며 또 선하게 채색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영이 맘과 몸이 얼마나 아플지, 주변의 어른들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질지 아저씬 가늠할 길이 없다. 아니 그걸 가늠해보려고 하는 거 자체가 이미 순수성을 잃은 아저씨의 약싹 빠른 계산법 일 수 있을 것이다.

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이 희생양 삼는 고삐 풀린 이기심, 나영이 같은 앳된 어린이가 성범죄의 피해자로 양산되는 데도 이를 막아 줄 울타리를 제대로 쳐주지 않은 무관심, 정작 일이 터지면 한 순간의 푸닥거리처럼 분노의 불길을 피우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문제를 외면해 온 망각의 습관, 너의 몸과 영혼을 앗아 간 짐승보다 못한 흉악범이 만취상태였다는 점을 정상참작의 이유로 내건 법의 비합리적 관대함, 보험금을 지급받았다고 나영이 가족의 생명 줄인 생활보호대상자 지정을 철회했던 행정의 냉정함, 사후약방문식으로 어린이대상 성범죄에 대한 엄단 방침을 밝히지만 정작 나영이가 지금의 충격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사회적 배려 시스템'의 부족.



이런 많은 잘못을 저질러 온 어른들. 나영이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지만 이번 일에 대해 많이 분노해 하고 있단다. 나영이의 동생, 친구, 언니들에게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단다.

이런 일이 지금의 나영이에게 무슨 위로,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입이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영이에게 이것만은 꼭 가르쳐 주고 싶다. 힘들고 괴롭고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보이겠지만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 사회는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팔 벗고 나서고 사회악에 대항하며 선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그래서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하다는 것을. 세상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어지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둠을 뚫고 나와 훤하게 세상을 비추는 강한 햇살이 우리 머리 위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아저씨는 나영이를 대신해 어른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요구를 하려 한다.


첫째 이미 얘기가 시작됐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법률을 개정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벌을 줘야 한다. 여기에는 징역형 기간을 최대한 늘리고 이후에도 확실한 치유의 보증이 없는 한 사회에서 계속 격리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범인의 인권문제를 말하는 일부의 의견이 있지만 그건 사치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어린이에 대한 성적 인격살인은 배려의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 때 자신이 치를 대가가 얼마나 큰 지를 알게 해줘야 한다. 말로 안 되는 건 엄중한 채찍질이 필요한 법이다.

둘째 정부기관이 됐든 민간기구가 됐든 나영이가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구나. 특히 정신적인, 심리적인 충격이 잘 아물어 나영이가 다시 세상을, 어른을 밝게 볼 수 있도록 지원의 손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일들은 나영이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알려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하겠지만...



셋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어린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 어린이 가정에만 맡겨 두지 말고 사회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가 악몽에서 헤어나 다시 해맑게 자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 펴 보지도 못한 새 싻 같은 삶이 人面獸心에 가위 눌려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인권을 추구하는 선진 사회가 아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보름달을 보며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 길에 나서고 있구나. 나영이도 휘영청 솟아 오른 한가위 달을 보며 마음 속에 희망을 되살렸으면 한다. 그게 그 흉악한 범죄에게 이기고 복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영아! 다시 한번 미안하다. 이 사회가 널 지켜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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