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명분은 전경련이 추진한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의 모범기업 하이닉스를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조 회장의 머리속에는 전경련 행사와는 별개로 효성그룹의 미래를 그렸을 듯하다.
업계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하이닉스 인수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려를 들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4년을 주기로 한 경기(실리콘사이클) 등락이 큰 대표적인 산업이다.
또한 메모리반도체는 구형 장비를 신형 장비로 교체만 하는 데도 연간 최소 1조 원 이상 설비 투자가 지속돼야만 생존이 가능한 분야다. 특히 제조라인 하나를 건설하는 데는 4조 원 이상이 투입된다. 호황 때는 많은 돈을 벌지만 불황 때는 적자를 보면서도 투자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하이닉스가 이렇듯 경기에 민감한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이미지센서 등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를 비롯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등 신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신사업 실적은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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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하이닉스 부채는 총 8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 기업이라는 하이닉스의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4조 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투입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었다.
이 밖에 삼성전자라는 메모리반도체 업계 부동의 1위 기업이 존재한다는 점과 최근까지 이어진 불황으로 기업들이 투자에 보수적으로 나선다는 점 등도 기업들이 하이닉스 인수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인수 의향자가 적은 이면을 보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의 부족도 큰 이유로 꼽힌다.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 축이 반도체지만 초기에 삼성 그룹 내에서 반도체가 '애물단지'였다.
하이닉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잘 나갈 때는 수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이지만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에서 과감한 배팅이 쉽지 않은 종목이다.
하이닉스에 정통한 소식통은 "하이닉스는 현재 인수자금(약 2조+전략적 투자자)만 있으면 되는 구조"라며 "인수자들이 두려워하는 운영자금이 필요 없는 구조로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대규모 투자 재원은 반도체 호황기에 벌어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기존 200mm라인을 300mm로 완전히 전환하고, 현재 낸드플래시 양산규모도 월 5만장으로 올려놓은 상태다. 현재의 부채 약 8조원을 4조원 정도로 줄이고, 현재 1조 5000억원 정도의 현금을 4조원 가량 늘리면 향후 위기가 와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이닉스 외부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지만 내부에서 충분히 가능한 시나라오라고 보고 있다.
하이닉스를 방문했던 인수 타진자들은 당장의 투자 부담과 향후 투자금 회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초 하이닉스를 방문했던 조 회장은 현장에서 하이닉스의 미래를 봤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와 접촉한 효성 인수팀은 하이닉스 인수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의 하이닉스 승부수가 실제 인수로 이어지고, 효성 그룹이 반도체로 재계에서 우뚝 일어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