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

양광모 휴먼네트워크연구소(HNI) 소장 2009.09.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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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내편으로 만드는법]성공적인 인간관계 유지하는 법

편집자주 양광모 휴먼네트워크연구소 소장은 인간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외교통상부 등 정부 부처와 삼성생명 코오롱 등 주요 기업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왔다. 저서로는 '인간관계의 맥을 짚어라(청년정신)' '100장의 명함이 100명의 인맥을 만든다(북북서)' 등이 있다.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


일요일 아침, 신문을 보는데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프라하를 방문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넸다는 내용이 기사에 실려 있다. "국민들이 너무 큰 기대를 하면 그게 나중에 배신감으로 바뀔 수 있다"

오바마가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대통령이 된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민심은 언제든지 쉽게 떠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기대가 크면 사소한 실수나 잘못에도 큰 실망을 느끼게 된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근 안산시 수암동에 있는 수암봉에 등산을 다녀왔다. 산행을 시작하여 40분쯤 올라가는데 한쪽 기슭에서 막걸리를 파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막걸리였다.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 타는 듯한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주던 맛이 기억에 떠올랐다.

2000원을 주고 사발에 가득 담긴 막걸리 한잔을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마셨다. 카~! 역시 기대한 맛 그대로였다. 세상에 이보다 더 시원하고, 이보다 더 맛있는 술은 없으리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세잔을 연거푸 마시고나서야 다시 산에 올랐다. 수암봉 등산이 끝나고 사람들과 헤어진 후에는 근처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현수막에 걸려있는 할인행사 문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묵밥 3900원' 이 집 역시 3년 전에 들렀을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처음에 묵밥을 먹었을 때는 너무나 맛있어서 두 그릇을 순식간에 후딱 비웠다. 얇게 갈은 얼음조각이 서걱서걱하게 씹히는 시원한 국물에, 쫄깃쫄깃한 도토리묵이 한 사발 가득 담겨져 나왔다. 동행한 아들은 그날 이후로 "수암봉에 묵밥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하였다.

식당 밖에 파라솔과 의자가 놓여져 있어 그 쪽에 자리를 잡았다. 기대감에 가득차 묵밥 한 그릇을 주문하였다.3분이 채 안되어 묵밥이 나왔는데 모양도 맛도 완전히 실망 그 자체였다. 미지근한 국물에 얼음은 보이지 않았고, 도토리묵 또한 고소하거나 쫄깃한 맛없이 그저 맹맹한 맛이었다. 억지로 몇 숟가락을 먹은 후 일어나려는데 어린 아이를 동행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음식 값을 계산하면서 주인에게 질문을 건넨다.


"여기 주방장이 바뀌었나요?"
"왜 그러시죠? 저희 아내가 10년째 요리하고 있는데요..."
"음식맛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얼음도 들어가서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그동안 육수를 외부에서 공급받아 썼는데 지금은 직접 만들어요. 더 맛있지 않나요? 얼음은 아직 준비를 못했네요."

30대 초반의 남자는 뚱한 표정이 되어 식당 주인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떠나갔다. 눈치를 보아하니 마음속으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3년 전처럼 맛있는 묵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불성실한 대답은 나의 이차적 기대마저 저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주인이 조금만 더 살갑게, 손님의 기대를 저버린 음식에 대해 미안함을 보여줬다면 한두 번쯤은 다시 그 식당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식당주인은 고객의 기대와는 아무런 관심 없이 다른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빈 그릇을 치우는 데만 정신이 없었다.

티보(Thibaut)와 켈리(Kelly)는 인간관계가 유지되거나 단절되는 이유는 투자와 보상의 상관관계에 달려있다고 해석하였다. 이를 사회교환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존속여부는 서로가 투자한 노력이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느냐에 달려있다.



즉 자신이 투자한 시간, 금전, 정신적 노력에 대한 보상이 크게 이뤄지는 인간관계는 만족을 느끼고 장기간에 걸쳐 유지된다. 반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거나 적게 일어나는 경우는 인간관계가 약화되거나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보상은 정서적인 보상과 물질적인 보상을 모두 포함한다. 결국 인간관계는 주는 것(cost)과 받는 것(rewards)의 교환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상호간에 남는 것(profit)이 있다고 판단될 때 인간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이 사회교환이론의 주장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cost)을 지불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할애하는 시간, 돈, 물질, 사업적인 도움이나 협력, 정서적 후원, 긴장과 갈등, 감정적 상처 등이 비용에 해당한다. 한편 그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정한 보상(rewards)도 얻게 된다.



돈, 물질, 지식과 정보, 사업적인 도움, 관심과 애정, 안도감과 자부심, 감정적 고양 등이 보상에 해당된다. 이렇게 비용과 보상을 주고받는 과정을 사회교환과정이라 하고 보상에서 비용을 제한 결과(Out-come)가 자신에게 이익(profit)이 된다고 판단되면 그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사회교환이론은 모든 인간관계의 본질을 핵심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반드시 계산적이거나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신과 감정에 관련된 인간관계의 영역도 궁극적으로는 내면에서 이뤄지는 비용과 보상의 교환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회교환이론은 매우 타당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원만하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방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고, 기업은 고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를, 남편은 아내의 기대를, 부하직원은 상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내가 그 사람들의 기대감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라.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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