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녹색성장의 확신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2009.09.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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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녹색성장의 확신


지난 5월 미국 오바마 정부는 2016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연비를 평균 15.1㎞/ℓ로 정한 연비규정을 발표했다. 중대형차 위주의 미국 자동차 생산업체들은 예상치를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EU는 한술 더떠 불과 3년 후인 2012년까지 평균 18.1㎞/ℓ를 충족해야 한다는 강력한 연비규정을 내놓았다. 만약 미국과 EU 자동차회사들이 자국 연비규정에 가까스로 맞춰 연비 개선을 실현한다면 EU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미국에 자유롭게 수출될 수 있지만 미국 자동차는 EU시장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가끔 신재생에너지분야 정책입안자들로부터 "기업인으로서 이 분야 정책 수립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재생에너지시장은 아직 전통적 에너지시장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습니다. 그러니 국내기업이 신재생에너지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시장이 아닌 세계시장에서 일정부분 이상 점유율을 확보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이런 목표치를 설정하고 목표달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지원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세계 풍력터빈시장 1위 기업인 덴마크의 베스타스, 태양전지시장 1, 2위인 일본의 샤프, 독일의 Q-Cell 등 EU와 일본기업들이 세계 신재생에너지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국가정책과 관련이 크다. 저유가정책을 채택한 미국 등 북미시장에서는 전기 생산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재생에너지분야가 발붙이기 어려웠던 반면 에너지가격이 높은 EU와 일본은 신재생에너지 가격경쟁력이 어느 정도 확보됐고, 정부의 보조금제도도 발달해 일찍부터 시장이 활성화되어 기업들이 마음놓고 기술개발과 투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EU국가들은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억제하는 한편 고유가정책으로 태양광, 풍력, 수력(소수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력을 보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신재생에너지분야에 과감한 지원책을 동원해 신재생에너지 점유율을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한도로 낮춰 유가에 따라 경기흐름이 좌지우지되는 현 석유 의존 경제시스템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적절한 환경규제는 기술을 발전시켜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포터가설을 내세웠다. 일반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 고비용·저효율 경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기업들이 친환경기술 개발 등을 통해 에너지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면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어 생산성을 높이게 된다는 게 '포터가설'의 요지다. 이 가설에 대한 회의론도 있지만 친환경·신재생에너지분야에서 유럽과 일본기업들의 약진을 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정책을 확고한 신념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친환경산업, 녹색산업을 성장을 견인할 국가 핵심산업 또는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민간 양쪽에 아직은 환경과 성장을 배타적으로 이해하는 인식의 벽이 존재함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기 로드맵을 좀더 선명히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분야별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전략까지 제시하는 확신 있는 태도를 보이면 민간분야에서 좀더 과감한 R&D 및 시설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 즉 과감한 규제와 지원정책을 좀더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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