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뽑은 이성태vs'방패' 든 윤증현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백진엽 기자 2009.09.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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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법 개정 시기놓고 다시 '정면 충돌'

-정부의 강온전략 vs 한은의 끝장 승부
-윤증현 "시기상조. 천천히 해도 된다"
-이성태 "이번에 반드시 처리해야"
-국회 재정위, 개정안 처리 우세 속 본회의 상정 여부 관심

'창' 뽑은 이성태vs'방패' 든 윤증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국회에서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싸고 또다시 정면충돌했다. 두 기관의 수장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줄 것인지 등을 놓고 해묵은 갈등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은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며 '창'을 꺼내 들었고, 윤 장관은 "시기상조다. 내년에 처리해도 된다"며 '방패'로 가로막았다.

국회 재정위는 지난 4월 임시국회의 논란 끝에 정부측이 9월 정기국회에 한은법 개정에 대한 정부 입법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었다. 하지만 정부는 대신 의견서와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구성한 한은법 개정 태스크포스(TF)의 논의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은법을 처리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이 총재는 "당장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면 이번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처리하고, 나머지는 추후 바꾸자"며 처리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정부의 강온전략, 한은의 끝장 승부= 한은과 금융감독원은 이틀 전 '정보공유 및 공동검사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에 따라 양 기관의 정보공유도를 사실상 100%, 현실적으로 98%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됐다.

윤 장관은 이날 "우선 MOU대로 해 보고 운영과정을 포함해 내년에 각계를 망라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고 요구했다. 국내 여건 미성숙, 유관기관간 현격한 의견 차이 등을 거론하며 '속도조절론'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개정 반대"라는 게 한은 측 판단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이에 대해 "재정부와 금감원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는 양동작전을 편 셈"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은의 오랜 숙원인 정보공유를 허용하되 단독조사권 부여를 원천봉쇄하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이 총재는 즉각 반발했다. MOU의 실효성에 대한 설명에서 "도움은 되겠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며 'MOU 무용론'을 제기했다. 또 "한은법 개정 TFT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지만 한은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 같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은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단독조사권 확보 등 오랜 숙원이 해결될 듯 했지만 9부 능선을 넘고 통과 직전에 멈춘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해 불어닥친 사상 초유의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은의 금융시장 안정 역할, 단독조사권 확보를 위한 기회를 얻었고 "이참에 끝장 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한은법, 이번에 처리될까= 정부와 한은의 대립 못지 않게 국회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재정위 소속 의원들은 대체로 한은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는 반면 금감원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의원들 사이에는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비록 정무위는 한은법 개정을 직접 다루고 있지 않지만 정부측 의견에 손을 들어주며 갈등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재정위 경제재정소위는 지난 4월 △한은에 금융기관에 대한 제한적 단독조사권 부여 △지급결제망 운영에 대한 책임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재정위 전체회의는 당시 통과됐던 개정안을 본회의에 그대로 상정할 수도 있고, 정부측 의견을 반영한 수정법안을 만들어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측이 한은법 개정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내세우며 완강히 버티며 재정위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재정위 안팎에서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한국경제가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탈출한 상태에서 "지금 당장 개정해야 한다"는 한은의 요구가 예전처럼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이날 전체회의에서 대부분 의원은 재정부 입장을 비판하며 정기국회 내 처리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국회가 한국은행법을 고치자고 하는데 기관간 이견이 많아 못하겠다는 자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말했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은 "유관기관이 완전합의할 때까지 기다리면 국회가 법개정을 못한다"며 "시간을 끈다고 해결되지 않는 만큼 여야가 합의해서 한은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효석 의원은 "MOU 체결 내용을 보니 정부가 많이 양보했다.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주지 않기 위해 양보한 것 같다"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지금까지 왜 못했는지 의문"이라고 재정부를 몰아세웠다.



배영식 한나라당 의원은 "MOU 체결했으니 이행해 보고 국제 및 시장상황 보면서 한은법 개정을 논의하자는 재정부 입장은 무책임하다"며 "과거 MOU 잘 안 된 만큼 마찰을 줄이기 위해 법으로 격상시켜 그 하위 내용을 MOU 등으로 하는 게 맞다"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

같은 당 김성식 의원은 "(TF의 보고서를 보면) 위에서 굽어본 자세로 코멘트한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의견을 결집못했는데, 수검기관의 처지만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의 처지를 살펴야 한다"고 질타했다.

반면 같은 당 이종구 의원은 "한은이 금융안정에 뛰어들면 한은의 힘을 제어할 수 없다. 우리는 여러 번 논의 끝에 금융감독위와 금감원을 별도로 두는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한은에 단독검사권과 금융안정 기능 주면 너무 힘을 주는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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