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동료대신 사과 키운 의리의 농군들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9.09.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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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가계부를 씁시다<10-1>]친환경 영농조합법인 '초록팜'

↑채준병 초록팜 대표가 친환경 농장에서 무농약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채준병 초록팜 대표가 친환경 농장에서 무농약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은다. 집을 사려고, 아이들 교육시키려고, 옷 사려고. 돈 모으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 가장 강력한 이유는 '내가 아플 때, 일을 못하게 됐을 때 나 혹은 내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데 내가 쓰러졌을 때 누군가 나대신 일을 한다면? 나대신 내 기업 혹은 내 농장을 돌봐준다면? 여기 돈 모은 통장을 볼 때보다 맘 흐뭇해지는 사연이 있다.



충북 충주 농업회사법인 '초록팜'의 김영준 씨(51)는 지난해 7월 어느 밤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병원 의사는 위독하다며 큰 병원에 가라고 말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려 9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에겐 여든 살에 가까운 노부모, 아직 대학생에 다니는 아들, 미혼의 딸이 있었다. 또 1만5000여 평(4만9500여㎡)의 사과농장이 있었다.



김씨가 누운 사이 그의 농장엔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무농약으로 어렵게 가꾼 친환경 농장이었다.

충주시 엄정면 노상작목반원 23명이 나서 풀을 베기 시작했다. 지난 2월엔 사과농사에 대비해 필요 없는 가지(겨울 전지전정)를 잘라냈다.

특히, 같은 작목반원이자 초록팜 동료인 채준병 씨(57), 이호영 씨(51)는 김씨 농장에 일손이 모자랄 때마다 달려가 소독해줬다.


석회보르도액을 넣은 자동분사기로 사과나무를 1년에 10여 차례 소독하지 않으면 해충은 물론 탄저나 점무늬 낙엽병, 갈색무늬병 같은 무서운 균에 감염되기 때문이다.

김씨의 1만5000평 농장을 소독하는 데에는 한 번에 이틀, 비 왔을 땐 사흘이 걸렸다. 동료들이 돌보는 동안 김씨 농장의 사과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초록팜 친환경 사과 배 세트↑초록팜 친환경 사과 배 세트
덕분에 김씨는 지난해와 비슷한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발갛게 잘 여문 홍로는 이번 달부터 판매가 시작됐는데 당도가 좋아 7천만~8천만 원 매출은 보장해줄 것 같다. 11월에 거둘 부사도 그만한 매출이 예상된다.

지난 4월 재활치료를 시작한 김씨는 목발을 짚고 밭에도 가끔 나갈 만큼 병세가 호전됐지만 아직 농사를 짓거나 거들기는 어려운 건강 상태다.

아무리 이웃이 병들었다고 해도 그 고되다는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랴. 초록팜 대표인 채준병 씨는 "당연한 일 했을 뿐"이라고 거듭 손사래를 쳤다.



"농사 같이 짓고 같이 호흡을 하는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떻게 안 도와줘요. 사과는 한번만 잘못 관리하면 값어치 떨어지는 걸 뻔히 아는데요. 당연한 거지요."

채씨는 "사과나무가 병충해에 감염되어 잎이 지면 내년 농사까지도 망가진다"고 말했다. 잎이 탄소동화작용을 활발하게 해줘야 나무가 내년에 사과를 맺을 꽃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나무 키우기가 까다로워서 사과로 무농약 인증 받기 참 어려운거에요. 충주시 사과농가 1700여 곳 중 무농약 인증을 받은 곳은 6곳뿐이에요."



초록팜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3곳의 농가가 공동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이다. 또, 23곳의 협업농장들이 초록팜을 통해 공동으로 과일의 출하 가공 공정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다행히 조합원들의 올해 사과 농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9월 출시하는 홍로는 발갛게 익어 한 입만 베어도 침이 흐르도록 달다. 11월에 출시할 부사도 알이 탱글탱글 잘 익어가고 있다.

그런데 채씨는 은근히 걱정이 늘었다. 풍년이 오면 가격 폭락으로 소득이 적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떨어져도 유통마진은 일반적으로 60~70%에 이른다. 생산에 든 비용을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로운몰(www.erounmall.com) 같은 사회적쇼핑몰이나 한살림(www.hansalim.or.kr) 등 일부 생협이 농가의 생산비용을 감안해 적정가격으로 구매해주는 있지만 농민이 이런 소비처를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

채씨는 "소망이 있다면, 일본 같은 농업선진국처럼 좋은 농작물에 걸맞는 가격이 책정되는 유통구조가 정립되는 것"이라며 "그러면 농민은 오로지 최고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에만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초록팜 조합원들은 어려운 형편의 다른 이웃도 챙기고 있다. 성심맹아학교, 충주시 장애인협회 등 사회복지시설에 한 해에 40여 상자의 사과를 보낸다. 초록팜 사과에는 의리와 맛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담겨 있다.



↑사과꽃을 함께 따는 작목반원들.↑사과꽃을 함께 따는 작목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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