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외채 관리·경제외교 무게 실어야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이새누리 기자 2009.09.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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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1년] <끝> 외환시장이 얻은 교훈

시장의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권에 들었던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빨리 먹구름을 벗어났다. 외환보유 창고는 1년전 수준을 회복했고 금융기관과 공기업의 적극적인 외화채권 발행으로 외화유동성도 풍부해졌다.

하지만 위기가 끝났다고 덮어만 놓으면 찜찜하다. 위기에서 어떤 걸 보느냐는 위기를 관통한 사람들의 과제다. 위기는 지난 1년을 되짚어보고 똑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말라는 교훈과 앞으로 외환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1년 외환시장엔 무슨일이= 지난해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자 불똥은 전세계로 급격히 번졌다.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10월 6.99%까지 치솟았다. 유례없는 수치였다. CDS란 채권 부도시 채권 매입자에게 손실을 보상해주는 파생상품의 하나로,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 그만큼 부도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레 환율도 요동쳤다. 10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두달새 400원 넘게 오르며 1500원대로 뛰어올랐다. 외화조달금리는 껑충 뛰었고 외화 돈줄은 꽉 막혔다.



10년전 IMF외환위기로 따라붙은 '부도국가' 이미지는 해외언론과 기관을 통해 덧씌워졌다. 외신들은 외환 보유액 문제를 들며 한국이 아시아에서 금융위기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주장했고 국내 은행의 지급불능 징후까지 보도했다. 이에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대외채무지급보증이란 카드까지 꺼냈다.

패닉에 빠진 시장을 얼마간 잠재운건 10월말 한미통화스와프협정 체결이었다. 시장을 정상으로 되돌리진 못했지만 달러를 공급받을 길이 생겼다는 것 자체로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그뒤 초저금리와 대규모 재정지출 공조로 각국 정부는 정상화를 시도했고 국내적으로는 2분기 이후 회복의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환율은 1200원대 초반으로 돌아왔고 주가는 1600선을 웃돌며 외환보유액도 리먼 사태 이전으로 회복됐다.


◇꼭 1년전 ‘태연과 긴급’ 사이=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국내외에서는 위기설이 산발적으로 흘러나왔다. 리먼 파산 이전부터 퍼졌던 글로벌 금융사들의 불안 조짐이 증폭되며 국내에 연쇄 충격파를 가져올 가능성이 컸고 국내적으로는 단기외채 과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3분기 말 단기 대외채무는 1895억 달러였고 1년 전과 비교하면 430억 달러가 늘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9월 위기설은 실체가 없다고 강변했고 리먼 사태 직후에는 기획재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리먼 사태 한달전 한국은행은 물가 우려를 강조하며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리먼 사태 이후 보이지 않는 공포는 현실화됐다. 외국인이 국내 자산을 무차별적으로 팔아치우며 주가가 1000선으로 급락했고 전세계적인 달러 부족 사태로 환율이 폭등했던 것.

당국은 긴급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은은 지난해 10월27일 긴급 금융통화위원회를 소집해 금리를 무려 0.75%포인트나 인하하기에 이르렀고 같은달 30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긴급 수혈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또 금융위기 조기 탈출을 위해 은행권에 자본확충펀드, 채권시장 안정펀드 등 총 27조원 이상을 공급했다.



정부 당국도 당시의 정책 실기와 판단 착오를 시인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난 금융위기와 같이 속도가 빠르고 금융과 실물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경우의 조기경보 시스템과 사전감지 능력이 미흡했다"고 밝혔다.

◇위기가 남긴 교훈= 전문가들은 우선 단기외채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단기외채에 치중하다 외환조달 통로가 막히면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어 유동성 불안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 조사국 이승호 차장은 "한차례 외환위기를 겪었던 국가가 '갑작스런 자본유입 중단'을 차단하기 위해선 단기외채를 줄이고 외환보유액을 확충해 외환부문의 건전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외교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통화 스와프가 외환 위기의 위험성을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 금융계가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원화의 미약한 위상을 다시 한번 절감해야 했던 것.

최호 산업은행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미 라인이 형성된 중국이나 일본과 통화스와프 라인을 더욱 공고히 하고 유럽과도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는 등 전략적으로 미리 백업라인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며 "경제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만큼 중국의 채권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변화 조짐에 대한 대응도 요구된다. 국채, 달러화 등 안전자산, 안전통화 선호에서 상품 및 주식 등 위험상품, 기타 통화에 대한 선호현상이 일부 재연되는 상황에 대한 준비가 절실하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는 “향후 달러화의 위상이 약화되면 위안화, 유로화가 부상하고 자원가격상승 등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신흥시장과 국제사회를 중심으로 나타날 기축통화 대체논의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채 규모를 측정할 때 다양한 기준이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외환보유액의 적정규모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외환거래 규모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외국자금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며 "금융시장 교란을 막을 수 있도록 외화보유 산출기준으로 단기외채 외에도 주식거래대금 일부도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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