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대응 '예방주사'가 '제2 환란' 막았다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정진우 기자 2009.09.09 08:52
글자크기

[글로벌 금융위기 1년] (3) 구원투수된 은행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 데는 정부 못지않게 금융회사 등 민간부문도 큰 역할을 했다. 은행들이 당국과 호흡을 맞춰 부실징후 기업들의 사전 구조조정에 주력한 게 일례다. 또한 금융위기의 충격이 외환위기 때보다 작았던 이유다.

◇"같지만 다른 위기"=1997년말 외환위기와 이번 금융위기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 두 위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위기의 진원지였다. 처방전 역시 '사후처리'와 '선제적 대응'으로 갈렸다.



외환위기는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문제였다. 기업들은 80년대 중반 '3저'(저유가, 저금리, 달러약세)에 편승해 무리한 성장전략을 폈다. 금융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무분별한 확장은 원화 및 외화유동성 경색에 취약했고 한보나 기아 등 유수 기업들과 은행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반면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출발한 이번 금융위기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을 계기로 급속도로 확산돼 세계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주요 선진국들도 휘청거렸으나 국내 금융회사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됐다.



◇위기에서 빛난 선제 대응=은행권의 대응은 외환위기 때와 확연히 달랐다. 과거에는 부실한 기업을 무리하게 살리려다 동반 부실의 악순환에 빠졌으나 이번에는 건설사들을 시작으로 조선·해운업체 등을 대상으로 미리 옥석을 가려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모든 거래기업의 재무위험을 평가해 A(정상) B(일시적 유동성 부족) C(워크아웃 대상) D(퇴출) 4등급으로 나누고 지원대상과 구조조정 기업을 사전에 분류했다. 대기업에 대해선 약정을 맺고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도록 했다. 97년 퇴출 당시 부실채권이 5조7000억원에 달한 한보 같은 사태를 막자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최범수 신한지주 부사장은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번 구조조정은 체력이 떨어진 기업을 도려내는 게 아니라 체질이 안좋은 곳을 솎아낸 것"이라며 "링거를 꽂고 약을 투여하기 앞서 예방주사를 놓은 형태"라고 말했다. 최익종 산업은행 부행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쌓여 금융권이나 기업 모두 상시 구조조정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줄다리기=구조조정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막판에 태도가 돌변했다. 건설업처럼 업계 전체가 반발하는 사례도 있었다.

은행 관계자들은 "기업 오너를 설득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워크아웃을 협의하자고 연락하면 잠적해버리는 오너가 있었고,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구조조정을 담당한 은행 임원은 "평소 그렇게 온화하던 이들이 구조조정 소식에 죽기 살기식으로 대했다"며 "어떤 곳은 은행 (지원)없이도 살 수 있으니 손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물론 "나는 괜찮지만 회사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경영자도 적지 않았다. 또다른 은행의 임원은 "상대적으로 우량한 기업에서 가슴아픈 장면이 많았다"며 "세계경제 흐름을 누가 예측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 흔들리곤 했다"고 말했다.

최만규 우리은행 기업개선단장은 "새벽 5시까지 한 잠도 못자고 일한 적이 한 두 번 아니었다"며 "은행, 나아가 경제와 국가를 위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은행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이다.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된 C등급 업체가 정상인 B등급보다 잘 운영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B등급 업체가 C등급보다 악화된 사례도 나타났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