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때 "살려달라"던 기업들은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09.09.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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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1년] (3) 구원투수된 은행

국민은행 기업경영개선부의 H차장은 올 1월만 떠올리면 고개부터 내젓는다. 당시 매일 야근을 하며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부실 건설사들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진행했다. 퇴근시간이 평소보다 3∼4시간 늦는 것은 기본이고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워크아웃에 속도가 붙었다. 업체들도 부실자산 매각 이행 등 은행의 권고를 충실히 따랐다. 그가 맡은 한 중견 건설업체는 워크아웃 실시 4개월여 만에 정상화됐다. 그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그때는 직원들 모두 잠잘 시간이 모자랐다"며 "한때 회생이 불투명하던 기업이 정상화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100일 간의 전투=올해 초 시중은행들은 '칼자루'를 다시 쥐었다. 부실기업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대상 기업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업체는 등급별로 생사가 구분됐다. 은행들은 C등급 이하 업체에는 책임자급 간부들을 파견해 관리에 나섰다.

은행내 구조조정부서도 숨가쁘게 돌아갔다. 직원들은 거의 날마다 철야작업을 하며 구조조정업체들을 점검했다. 업체들에선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C등급을 받은 한 중견 건설업체의 영업담당 임원은 "채권은행에서 너무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는데 좀 서운했다"며 "호시절에는 서로 좋은 관계였는데 태도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건설업체 등의 '로비'도 부담이었다.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막무가내형 선처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읍소형 부탁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만들었다. 워크아웃을 담당한 한 은행 임원은 "나이도 지긋한 분이 눈시울을 붉히며 전직원이 힘들게 일군 회사여서 여기서 끝내면 안된다고 호소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살아난 곳, 살아날 곳=은행과 합의한 자구계획을 성실히 이행한 업체일수록 워크아웃 졸업에 걸리는 기간이 짧았다. 자금지원이 신속히 이뤄지면서 개선작업에 탄력이 붙은 것이다.

그동안 1·2차에 걸쳐 C등급을 받은 24개 건설업체 가운데 5곳(롯데기공, 신일건업, SC한보, 대아건설, 대원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이들 업체는 채권은행들과 양해각서를 맺고 자산매각과 인력감축 등 뼈를 깎는 작업을 진행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상화 의지가 있는 업체일수록 채권단과 갈등이 적어 개선작업이 신속히 진행돼 워크아웃을 조기에 졸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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