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위기 소방수의 희생

더벨 김현동 기자 2009.09.0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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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경영분석]대기업·은행 유동성지원에 자산건전성 악화일로

이 기사는 08월26일(17:3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과거 산업은행이 맡아왔던 역할이 수출입은행으로 넘어온 것 같다."



수출입은행은 과거 전통적인 무역금융과 해외투자·해외자원개발 관련 금융지원을 전담해왔다. 그러나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할이 바뀌고 있다. 이른바 '시장 안전판'이다.

금융중개기능이 멈춘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의 공은 혁혁했다. 단기 외화자금이 바닥난 시중은행에 유동성 공급 창구가 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에도 긴급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수 차례에 걸쳐 정부가 유상증자에 나섰고 자산과 부채가 몰라보게 커졌다.



자산건전성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부실 여신은 무려 5배 이상 급증했고, 1000%에 달하던 고정이하 여신에 대한 충당금적립비율은 3분의 1토막이 났다. 국책은행의 기능을 수행하며 얻은 상처다.

◇ 1년새 자산 52% 폭증…위기극복 해결사?

2007년 23조원이던 수출입은행의 자산은 2008년 35조원으로 늘어났다. 1년 동안 무려 52% 폭증했다. 늘어난 자산의 대부분은 20조원에서 32조원으로 급증한 대출채권이다.


대출채권은 주로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기업과 금융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용도였다. 수출입은행은 이를 위해 정부(외국환평형기금)와 해외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했다.

18조원이던 부채도 작년 30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대부분 외화부채다.



1조7266억원이던 외화차입금은 4조4585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외화사채도 14조원에서 19조원으로 늘었다.

수출입은행은 이렇게 빌린 자금을 대기업과 은행에 지원했다. 대기업 중에서는 플랜트·해운·항공·자동차 등의 운수업에 자금이 집중됐다.

2007년 9222억원이던 수출입은행의 일반은행에 대한 외화대출금은 2008년 2조4615억원으로 배증했다. 외화유동성 위기에 처한 국내 시중은행들을 구하기 위한 돈이었다.



작년 운수업종에 지원한 자금은 8조7362억원으로, 2007년(5조2417억원)에 비해 3조원 이상 늘었다. 이로 인해 전체 대출금 가운데 운수업종 관련 대출의 비중은 25%에서 27%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금융업 관련 대출 비중이 21%에서 14%로 크게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작년말과 올해 초에 플랜트, 선박, 자동차 관련 업종의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들에 대해 '네트워크 대출' 형태로 자금이 많이 집행됐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대출'이란 조선·해운·자동차 업종의 대기업을 차주로 하되, 실제 자금지원은 납품 중소기업에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명목상으로는 대기업에 지원된 돈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수출 중소기업에 자금이 흘러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출입은행은 올해도 2조 5000억원의 '네트워크 대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 BIS비율 8% 전락할 뻔…자산건전성 급속 악화

이 처럼 대규모 부채를 끌어다 유동성 지원에 나서면서, 수출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작년 말 8.70%로 떨어졌다. 부실은행을 판정하는 기준인 BIS비율 8%를 위협받은 것이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사실상 적자로 돌아섰다. 당기순이익은 939억원이지만, 손익계산서에 반영되지 않은 기타포괄손익누계액 감소분(5645억원)을 반영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470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정부는 수출입은행의 대출여력 확대와 자본적정성 개선을 위해 작년 말 6500억원을 현물로 출자했다. 그러나 대규모 손실로 인해 자기자본은 불과 1000억원 남짓 늘었다.

정부는 올 들어서도 1월에 3000억원을 현금 출자하고, 3월과 5월에도 각각 5000억원의 현물출자와 2500억원의 현금출자를 단행했다.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1년간 수출입은행에 투입한 자금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대손상각 기준 '예정손실률' 방식 변경..충당금 설정률 낮춰



정부의 대규모 자본투입에도 불구하고, 수출입은행의 자산건건성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된다. 엄청난 자산 증가 속도와 달리 대손충당금 적립은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덜 쌓고 있다.

2007년 737억원이던 수출입은행의 고정이하 여신은 올 6월말 현재 3936억원으로 434% 늘어났다. 반면, 같은기간 고정이하 여신에 대한 충당금적립비율은 1215%에서 376.9%로 급격히 추락했다.

수출입은행은 대손상각 기준을 바꿨다. 과거에는 정상여신에 대해 국내 시중은행의 평균 적립률과 신용등급별 채권가산율 등을 활용했지만 작년부터는 자체적으로 정한예상손실률을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 대손충당금 설정률은 2007년 3.57%에서 작년에는 3.12%로 떨어졌다. 규모가 작은 원화대출금(6조696억원)에 대한 충당금 설정률은 2.51%에서 3.13%로 올랐지만, 규모가 큰 외화대출금(24조33525억원)에 대한 충당금 설정률은 3.77%에서 3.07%로 떨어졌다.

특히 가장 규모가 큰 '정상' 분류 여신에 대한 충당금 설정률이 모두 떨어졌다. '정상' 여신 중 원화대출금(5조9396억원)에 대한 충당금 설정률이 1.62%에서 1.43%로 하락했고, '정상' 여신 중 외화대출금(24조2557억원)에 대한 충당금 설정률은 3.38%에서 2.83%로 내려갔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수출입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건전성 수치가 크게 나빠졌다"면서 "다만 국책은행의 특성상 시중은행과 똑같이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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