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은 기나긴 민주화 투쟁을 통해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점에서 한국은 물론 세계 정치사에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인으로 남게 됐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과 더불어 20세기 민주주의 운동을 상징하는 양대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DJ의 유산= 정치권은 △남북 평화통일을 향한 의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등을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으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는 김 전 대통령 시대에 비해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찌보면 '신 냉전시대'에 들어선 모습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북한이 고위급 사절단을 파견했고, 이날 사절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최초로 남북간 공식 대화가 성사됐다. 이에 따라 경직된 남북관계가 해빙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투옥, 사형선고, 감금 등을 극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실천을 놓지 않았다. 빈소, 분향소를 국회에 차리고 이날 치러진 영결식을 국회에서 거행한 것도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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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지난해와 올초에 거친 '입법전쟁' 등을 거치며 극단적인 대립구도에 빠졌고, 이후 타협과 대화가 단절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 대의에 따른 의사결정이란 의회주의는 실종될 수밖에 없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여야 등 정치권에서는 '의회주의의 복원'이란 과제를 껴안게 됐다. 청와대와 정부 측이 일부 보수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족 뜻을 존중해 국민장이 아닌 국장으로 장의의 격을 높이는 등 화해의 정신을 보인 것도 촉매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3김(金) 시대의 청산= 3김 시대의 완전 청산이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역에 근거한 패권주의를 넘어 '전국정당' 출현이란 시대적 과제로 이어진다고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절대적인 개인 카리스마에 의존한 한국 정치 문화의 종식을 뜻한다. 한나라당 한 초선의원은 "한국 정치 특히 정당은 지역주의에 갇혀 성장을 위한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영남정당, 민주당은 호남정당'이란 인식이 사라질 때 비로소 한국 정치는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김 전 대통령은 의회 민주주의의 주창자, 평화적 정권교체의 주역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지역 패권주의의 최대 수혜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영·호남 지역 갈등'이 각각 씨줄과 날줄을 이뤄 그의 정치활동의 기반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지역균형발전'에 천착했지만 성과보다는 갈등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주의의 청산이란 숙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정치개혁 구상'을 통해 지방행정체제 및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지역주의 해소를 천명했다. 이는 3김 시대부터 내려온 지역 패권주의를 극복해야만 한국 정치와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고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 대통령이 진단해 내놓은 '근원처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