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에 대한 노랫말에 공감하셨던 것 같다"고 측근들은 말했다. 성공신화에 매몰된, 가난에 지친 사람들을 비춘 노랫말이 약자와 민주주의에 헌신한 자신의 마음에 와 닿았을 거란 얘기다. 1987년 잇따라 발표되면서 민주화 운동 분위기를 타고 '히트'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게다.
↑ 신형원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과 교수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
김 전 대통령과 신 교수의 인연은 90년대 초 '꼬마 민주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대통령이 92년 3·24 총선을 앞두고 '꼬마 민주당'과의 통합에 성공할 무렵 전국 순회 유세에 신 교수를 직접 초청했다. 국민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문화공연을 함께 진행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때의 인연이 이어져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신 교수와 자주 만나 식사를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신 교수는 6·15 공동선언 기념공연 음악감독을 맡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신 교수는 실감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19일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임시빈소에 가서야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그 분을 영영 못 보게 됐구나라는 게 느껴졌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아버지를 잃은 느낌"이라는 말 뒤엔 한숨이 묻어났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김 전 대통령의 유족측은 20일 신 교수에게 고은 시인이 쓴 추모헌시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추모곡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21일 현재 작곡까진 작업이 끝난 상태다.
신 교수는 "저도, 국민들도 슬퍼하잖아요. 그 슬픔이 곡에도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밤새 녹음 작업을 마치면 오는 22일 오전쯤 추모곡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