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서거, 北에서도 가슴아파할 것"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사진=이명근 기자 2009.08.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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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서 만난 '허갑범' 김 前 대통령 주치의 인터뷰②.끝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열정적'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허갑범 전 연세의대 내과 교수(현 허내과 원장)는 회고했다

"해외순방길엔 항상 함께했는데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행사에 가면 공식행사 외에도 하루에만 5~6개국 정상들을 한시간 간격으로 만났어요.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위기에 있을 때였으니 모두 무거운 주제들이었을텐데 끄덕없이 해내셨죠. 조금이라도 건강이 나빠지셨던 순간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정말 열정 그 자체셨어요."



대통령 주치의는 청와대에 상주하지 않는다. 대신 청와대에는 의무실장과 의무대장, 간호부장 등이 24시간 대통령과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진다. 대신 주치의는 30분 내에 올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차관급 예우를 받지만 공식적인 급여는 없다. 한마디로 명예직이다. 하지만 해외순방길이나 여름휴가 등 대통령의 외출에는 항상 함께한다. 지근거리에서 건강문제를 책임지고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이명근기자 qwe123@ⓒ이명근기자 qwe123@


허 원장은 남북정상회담부터 노벨평화상까지, 임기 중 있었던 '역사적인 현장'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항상 함께 있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당시를 회상하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북에서도 마음 아파할 것"이라며 "북에서 조문단을 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렇게 깍듯하게 대할 수가 없었어요. 김 전 대통령은 물론 방문단 모두에게 어찌나 잘했는지 몰라요. '여기까지 오게 해 미안하다'부터 '고생하셨다'까지 대통령을 아버지 대하듯 정말 애틋하게 맞았어요. 대통령께서도 기분좋게 응수했고..'화기애애'를 넘어서는 분위기였죠."


그는 해외순방 뿐 아니라 청남대에서 보내는 대통령의 여름휴가에도 함께했다.

"청남대에선 여사님과 함께하는 점심식사에 초대해주시는 날이 많았죠. 그런 날이면 식사하면서 교육문제와 의료문제, 특히 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이 물으셨어요. 한국은 잘하고 있는건지 꼼꼼히 물으시고 이야기했었죠."



김 전 대통령은 2000년초 '의약분업'을 추진하던 시절, 의료계에선 '공공의 적'으로 통했다. 허 원장도 당시 상황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의사였던 만큼 그에 대한 의료계의 기대도 컸을 터.

"아직은 준비가 덜 돼 이대로 실시하면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시간을 따로 내 말씀드렸었어요. 이미 전 정권에서 입법예고한 내용이고, 100대 공약에도 포함됐던 사안이라 번복하긴 힘들다고 하시더군요. 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대신 6개월 늦춰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셨죠."

2002년 8월, 대통령 임기를 6개월 남겨놓고 허 원장은 주치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연세의대에서 정년퇴직을 하게됐기 때문. 하지만 물러난 후에도,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한 두달에 한번씩 동교동을 찾아 인사드려왔다.



ⓒ이명근기자 qwe123@ⓒ이명근기자 qwe123@
허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18일 오후 5시 조문이 시작되자 마자 연세대 총장과 세브란스병원장, 치료를 맡았던 의료진 등과 합동으로 김 전 대통령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단다.

"너무 좋은 말한 한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그 분은 정말 진실하고 박식하고 매력적인 분이셨어요. 안타까움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허 원장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경복고와 연세의대를 졸업했다. 1964년 의사국가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며, '송촌 지석영상', '분쉬의학상' 등을 수상한 당뇨병계 석학이다. 연세의대 학장과 대한당뇨병학회장, 한국성인병예방협회장도 역임했다.



교수시절 한 해 1만4000명의 환자를 돌볼 정도로 열정적이던 그는 병원에서 '하회탈 의사'로 통했다. 하회탈 가면의 주인공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환자들을 대했기 때문이다. 함박웃음 그대로 새겨진 얼굴주름이 그의 웃음인생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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