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前 들것에 실려온 DJ와 첫만남"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사진= 이명근 기자 2009.08.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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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서 만난 '허갑범' 김 前대통령 주치의 인터뷰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밤. 임시 빈소가 마련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인근에서 만난 허갑범 전 연세의대 내과 교수(현 허내과 원장)은 황망한 표정이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재직시절 '대통령의 주치의'였다.

"다 지난 일"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그를 설득해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엔 인터뷰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김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기억하는 그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이명근기자 qwe123@ⓒ이명근기자 qwe123@


허 원장과 김 전 대통령의 인연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야당 당수였던 김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제 문제로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단식 후 기력이 쇠해져 병원을 찾았다.

"들것에 실려 있는 모습이 처음 직접 본 김 전 대통령이었어요. 병원장이 주치의를 맡으라고 지시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수척한 상태로 오셨는데 2주 정도 입원해 있으며 회복하시곤 퇴원했죠. 그때도 단식으로 인한 후유증 외에 건강문제는 없었어요."



이후 15대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건강문제가 불거지자 허 교수는 몇몇 의료진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을 검진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공식 소견서를 내놨다. 이는 '건강이상설'이 최대의 약점이던 후보자 시절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에 날개를 달아줬다. 김 전 대통령은 당선 후 허 원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대통령 주치의를 세브란스병원 의사가 맡는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어요. '어의'는 국립대인 서울대병원이 전담해왔거든요. 오랫동안 야당에서 활동했고, 자택이 있는 동교동과 가까워서였는지 저를 지목하셨고, 부름을 받게 됐습니다."

주치의 시절 허 원장이 곁에서 본 김 전 대통령은 '책 중독'이었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1면부터 마지막면까지 그야말로 '정독'을 하고서야 내려놨다.


"말그대로 평생교육을 실천한 분이죠. 죽을 때까지 배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대단히 공부를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모든면에서 아는 것도 어찌나 많은지... 항상 놀랐으니까요."

'사려깊음'도 김 전 대통령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라고 했다.



"어떤 분이었는지 한마디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무척 사려깊은 분이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실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법이 없었어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건데 곁에서 보니 알겠더라고요.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진정으로 대했던 사람이라면 매료될 수 밖에 없을거에요."

ⓒ이명근기자 qwe123@ⓒ이명근기자 qwe123@
건강이 워낙 좋아 주치의 역할을 제대로 해볼 기회는 없었단다.

"워낙 건강은 타고나셔서 실제로 만나면 오히려 건강 얘긴 별로 안했어요. 식욕이 좋아 좀 줄여드시라고 권한 것 밖엔 한 일이 없죠. 중국음식을 유독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운동도 권했지만 다리가 불편하시니..."



허 원장은 주치의로 있는 동안 청와대로부터 급하게 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없냐는 질문에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해서 혹 있을지 모를 건강이상 여부를 수시로 살피는 게 전부였단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의 건강문제는 선거기간 뿐 아니라 임기 중에도 계속 입방아에 올랐었다. 암에 걸렸다는 소문부터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설까지. 과로로 반나절 입원이라도 하면 다음날 신문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었다.

허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7월 13일부터 병원을 통해 건강상태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었다. 서거 당일에는 개원하고 있는 내과에서 외래환자를 보는 중이었다.



"한참 환자를 보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안좋아지셨다고. 돌아가시기 1시간 전 쯤 부리나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얼마지나지 않아 운명하셨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아직 할일이 많으신데 너무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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