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난 일"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그를 설득해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엔 인터뷰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김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기억하는 그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이명근기자 qwe123@
"들것에 실려 있는 모습이 처음 직접 본 김 전 대통령이었어요. 병원장이 주치의를 맡으라고 지시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수척한 상태로 오셨는데 2주 정도 입원해 있으며 회복하시곤 퇴원했죠. 그때도 단식으로 인한 후유증 외에 건강문제는 없었어요."
"대통령 주치의를 세브란스병원 의사가 맡는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어요. '어의'는 국립대인 서울대병원이 전담해왔거든요. 오랫동안 야당에서 활동했고, 자택이 있는 동교동과 가까워서였는지 저를 지목하셨고, 부름을 받게 됐습니다."
주치의 시절 허 원장이 곁에서 본 김 전 대통령은 '책 중독'이었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1면부터 마지막면까지 그야말로 '정독'을 하고서야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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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평생교육을 실천한 분이죠. 죽을 때까지 배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대단히 공부를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모든면에서 아는 것도 어찌나 많은지... 항상 놀랐으니까요."
'사려깊음'도 김 전 대통령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라고 했다.
"어떤 분이었는지 한마디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무척 사려깊은 분이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실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법이 없었어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건데 곁에서 보니 알겠더라고요.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진정으로 대했던 사람이라면 매료될 수 밖에 없을거에요."
ⓒ이명근기자 qwe123@
"워낙 건강은 타고나셔서 실제로 만나면 오히려 건강 얘긴 별로 안했어요. 식욕이 좋아 좀 줄여드시라고 권한 것 밖엔 한 일이 없죠. 중국음식을 유독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운동도 권했지만 다리가 불편하시니..."
허 원장은 주치의로 있는 동안 청와대로부터 급하게 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없냐는 질문에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해서 혹 있을지 모를 건강이상 여부를 수시로 살피는 게 전부였단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의 건강문제는 선거기간 뿐 아니라 임기 중에도 계속 입방아에 올랐었다. 암에 걸렸다는 소문부터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설까지. 과로로 반나절 입원이라도 하면 다음날 신문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었다.
허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7월 13일부터 병원을 통해 건강상태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었다. 서거 당일에는 개원하고 있는 내과에서 외래환자를 보는 중이었다.
"한참 환자를 보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안좋아지셨다고. 돌아가시기 1시간 전 쯤 부리나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얼마지나지 않아 운명하셨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아직 할일이 많으신데 너무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