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양용은의 샷과 도전, 그리고 꿈

머니투데이 방형국 골프담당기자 2009.08.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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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8번 홀(파4) 페어웨이 왼쪽 러프에서 빈 스윙을 하는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의 스윙동작이나 얼굴표정은 마치 가족이나 친구들과 플레이를 하는 듯 편안해 보였다.

핀까지 206야드 거리. 양용은의 세컨드 샷은 그린 앞 벙커를 넘어 프렌지에 떨어지더니 굴러서 홀 2m지점에 멈춰 섰다. 갤러리들의 환호성이 헤이즐틴내셔널GC을 뒤덮었다. 양용은의 냉정하고도 과감한 샷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환호성이었다.



1타를 뒤지고 있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전의마저 상실한 듯 세컨드 샷을 그린 왼쪽 러프에 빠뜨렸다. 이번에는 갤러리들의 탄식이 들렸다.

그래도 타이거 우즈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버디 기회마저 잡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며 한국의 무명 선수에게 역전패 당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이 묻어난 탄식이었다.



양용은은 '호랑이 포획'을 확신한 듯 2m 거리에서 과감하게 버디퍼트를 성공시켰고, 우즈는 파 퍼트마저 놓치고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양용은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즈에 3타 차이로 극적으로 역전 우승하는 순간이다.

18번 홀의 세컨드 샷이 호랑이를 쓰러뜨린 '위닝샷'이었다면 14번 홀(파4)의 칩샷 이글은 호랑이를 우리 안에 가두는 '승기'를 잡는 샷이었다.

301야드의 짧은 파 4홀에서 두 선수 모두 티샷으로 그린을 노렸다. 양용은의 티샷은 그린에 훨씬 못 미쳐 벙커 바로 옆에 걸렸고 우즈의 티샷은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우즈의 벙커샷은 홀 옆 2.5m에 떨어졌고 양용은 차례.


양용은이 20여m를 남기고 친 칩샷은 그린 위에 앉더니 10여m를 굴러 홀 속으로 사라졌다. 이글. 양용은은 이 이글로 1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갤러리들은 '설마 설마'했지만 18번 홀에서 양용은의 냉정하고도 과감한 '위닝샷' 한방에 우즈는 쓰러지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골프연습장에서 볼을 줍던 '볼보이'는 이렇게 메이저 대회 챔피언으로 우뚝 올라섰다. 한국인으로서는 물론 아시안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챔피언 자리에 등극했다.

1972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양용은은 가난했으나, 포기를 모르는 강인한 '바람의 아들'이다. 그의 삶 자체가 굴고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가난에 대한 도전, 꿈에 대한 도전, 야망에 대한 도전이 그의 인생 전반을 수놓고 있다.

골프를 배울 형편이 안되어 부모님의 권유로 공사판과 농삿일을 전전하기도 하고, 무릎을 다쳐 좌절하기도 하고, 골프에 대한 열망에 도전하기 위해 가족들을 지하 단칸방에 놔둔 채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앞을 막을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골프채를 구입할 형편이 안돼서 비닐하우스를 받치는 파이프를 클럽삼아 휘두르기도 하고, 연습장을 찾은 프로들의 스윙동작을 눈으로 훔쳐보기도 하며 1996년 한국프로골프(KPGA) 프로 테스트에 합격, 프로 선수가 됐다.

양용은이 KPGA 테스트를 통과한 1996년은 우즈가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골프신동'으로 추앙받으며 프로로 전향했던 해이다. 그리고 '골프신동'은 데뷔 첫 해부터 라스베이거스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니 다음해에는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등 '골프황제'의 길을 걸었다.

프로가 됐다 해서 그의 지긋한 가난이 끝난 게 아니었다. 1997년 신인왕에 오르고도 그가 손에 쥔 수입은 고작 1200여만원.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일본골프투어를 노크하고, 세계 최고의 무대인 PGA 문도 두드렸다.



과정은 어려웠지만 노력하고 준비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양용은에게 모두 문을 열어주었다. 일본에서 4승을 거둔 양용은은 본격적으로 PGA에 도전장을 던졌다.

실력이 있어야 행운도 따른다고 했던가. 노력하고, 준비하고, 쉼없이 도전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행운도 따랐다. 2006년 11월 우연히 참가한 유럽 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2타 차이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한 것이다.

당시 6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우즈의 7연승을 저지했다는 의미에서 '호랑이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고, 세계 골프랭킹이 40위로 치솟으며 화려하게 세계 골프계에 등장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그 해 12월에 열린 PGA 퀄리파잉 스쿨에서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당한 것. HSBC 대회 우승 등으로 쌓은 랭킹을 바탕으로 2007년 PGA 투어 9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마스터스 공동 30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양용은은 2007년 '2전3기' 끝에 PGA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2008년 예선으로 밀려난 끝에 2009년에야 다시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 대기 선수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양용은은 지난 3월 열린 PGA 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승리를 차지하며 2006년 HSBC 챔피언스 우승 이후 28개월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의 계속되고 있는 골프 도전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야망에 대한 도전 차례. 메이저에서 우승컵을 드는 것. 그의 야망에 대한 도전은 생각보다 일찍 결실을 맺었다.

'메이저 챔프' 양용은의 위상은 한껏 올라가게 된다. 부와 명예도 부와 명예를 한번에 거머쥐게 됐다.

135만달러의 상금을 추가해 올 시즌 PGA 투어 상금 322만941달러로 상금랭킹에서 9위로 뛰어 올랐고 110위였던 세계 랭킹도 50위 이내로 급상승하는 것은 기본.



지난 3월 혼다클래식 우승으로 2년간 PGA투어 풀시드권을 확보하고 있는 양용은은 이번 우승으로 PGA 챔피언십 뿐 아니라 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까지 4대 메이저 대회에 5년간 출전권을 확보했다.

경제적으로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각종 이벤트 및 초청 대회에 1등석 왕복 항공권과 특급 호텔을 제공받는 것은 물론 메이저 챔피언으로서 평균 150만달러 이상의 초청료를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초의 아시아 출신 메이저 우승자라는 희소성으로 인해 일본과 중국에서 열리는 특급 대회에서 러브콜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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