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이전안하면 전셋값 5천만원 할인"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2009.08.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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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들 양도세 면제요건 위해 은밀한 제안


-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불법 전세계약 기승
- 세입자, 우선변제권 등 상실 가능성 '주의'


↑ 집주인들이 양도소득세 조기면제를 목적으로 주소이전과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전셋값을 할인해 주는 불법 거래가 만연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신규 재건축 단지 일대 모습.↑ 집주인들이 양도소득세 조기면제를 목적으로 주소이전과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전셋값을 할인해 주는 불법 거래가 만연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신규 재건축 단지 일대 모습.


# 결혼을 앞둔 김 모(34)씨는 서울 송파구 잠실의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를 다니던 중 최근 너무 올라버린 시세에 실망, 발길을 돌리려했다. 문을 나서려던 그에게 중개업소 사장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용은 일반 시세보다 5000만원 싼 값에 나온 전세 매물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은밀한(?)' 조건이 하나 붙었다. 주소를 이전·확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다소 꺼림직했지만, 일단 싼 값에 물건을 구할 수 있어 김 씨로선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최근 들어 엘스, 트리지움, 리센츠 등 송파구 잠실 일대 신규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주소 이전과 확정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세가격을 할인해 주는 거래 방식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입주는 하되, 계약기간 동안 세입자가 주소를 옮기지 않을 경우 시세보다 싼 가격에 계약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9월 입주를 시작한 잠실 엘스 전용면적 59㎡의 경우 전세 시세는 3억~3억2000만원 선이지만, 주소 이전하지 않고 확정일자도 받지 않는 조건으로 2억7000만~2억8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잠실동 S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 때문에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없다는 내용으로 임차인을 안심시키고 있다"며 "주로 학교 문제가 없는 무자녀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시장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집주인들이 이처럼 애써 보증금을 줄이면서까지 세입자를 구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매도 시점에서 물어야 할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재 서울에서 1가구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은 '3년 보유, 2년 거주'다. 이 요건을 충족시켜야 양도세를 물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이 같은 제안은 가뜩이나 전셋값 단기 급등에 부담을 느끼는 수요자 입장에선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물론 가급적 싼 값에 전세매물을 구하려는 수요자와 양도세 비과세 거주 요건을 최대한 빨리 채우려는 집주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곧바로 거래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임차인이 이처럼 싼 값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계약한 후 주소 이전과 확정일자를 받지 않을 경우 자칫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박병석 변호사는 "계약서상 확정일자를 받아두지 않은 상태에서 만일 해당 주택이 경·공매 처분되면 임차인은 제3자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해당 자치구인 송파구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집주인의) 탈세 우려와 주민등록법상 문제 소지가 있다"며 "전수 조사를 통해 위법 여부가 드러날 경우 처분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차인들도 불법으로 전세계약을 맺을 경우 위험 요소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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