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남중-남고-약대-군대-단지

머니투데이 유승호 부국장대우 산업부장 2009.08.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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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남중-남고-약대-군대-단지


“씁쓸~하구만”
개콘에서 ‘씁쓸한 인생’을 더이상 못보게 돼서가 아니다. 대구 신서, 충북 오송 등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을 보는 느낌이 그렇다. 30년간 5조6000억원이나 투입해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의 의료산업’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는데 의료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치적 후원지역에 대한 선물’이란 시비는 관두자. 정치인들이 기왕이면 후원지역을 먼저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런 생리다. 다만 많은 돈을 들여 하는 일이니 헛돈 되지 않도록 몸에 맞는 옷을 사주고, 오래도록 보약이 되도록 해야 할 텐데 뒷일은 불사하고 떡 하나 떼 주는 식 아닌가 걱정스럽다.



언제부턴가 무슨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뚝 잘라 떼 주듯 한다. 그러다 보니 조성할 때 '세계 최대, 아시아의 거점..' 등을 목표로 내세우지만 몇년후엔 그곳이 어디 있는지 기억도 안난다. 이번 첨단의료단지는 그나마도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니 두 군데 반씩 쪼개준 꼴이다.

이 같은 산업단지 선정 과정에서 가장 문제는 번번이 '시장'이 무시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각종 '전문가' 7300명 가운데 240명의 '전문가'를 뽑고 그 가운데 60명의 '전문가'가 입지 후보를 골라 17명의 '민관 위원'들이 선정했다.



선정 과정에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지만 정작 그곳에 돈을 집어넣고 투자 손실 위험을 감수할 제약회사 병원 등 '돈 낼 사람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그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잘못되면 그 '전문가'들과 '민관위원'들이 손해 보는가?

그래서 걱정이란다. 첨단의료단지에 투입될 5조6000억원의 재원 가운데 3조4000억원(총 투자액의 61%)은 민간이 내기로 계획돼 있다. 애드벌룬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는데 그들이 과연 위험을 감수하고 그 돈을 투자해줄 지 불투명한 모양이다. 애초부터 의사결정권의 61%를 그들에게 주는 게 시장원리였고 그랬다면 훗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의료계는 자연발생적 시장을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그들이 서울대병원, 삼성의료원, 현대아산병원 등을 두고 대구 오송까지 치료받으러 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시장과 인접한 병원(임상시험 인프라)은 수도권에 있고 공장(신약개발시설)은 지방에 따로 떨어져 ‘단지로서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의 의료산업을 키워내는 일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있다. 의료관련 학과에 한국의 최상위 학생들이 몰려든 지 오래다. 이 분야에서 한국이 대박을 터뜨릴 법하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냉혹한 얘기지만 공대생들은 지방 근무의 비애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대체할 직장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의대, 약대생들은 그럴지 의문이다. ‘남중-남고-공대-군대-현장’으로 이어지는 ‘5종 세트’의 사나이로 불리는 공대생들이 더욱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웃지못할 세태가 최근 인터넷에 화제가 됐다.

“성능면에서 세계 제일의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세계 제일의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능공들’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작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보면 그가 자동차산업에 자신감을 가졌던 연유는 바로 ‘사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날 우리가 가난했던 책임은 국민에게가 아니라 국민을 이끌어나갔던 지도자층에 있었고, 우리의 산업이 낙후했던 원인은 기능공들이 신통치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경영자, 관리자들의 능력이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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