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할머니들의 완소남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9.08.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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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일자리 만드는 청년, 경북경주시니어클럽 이상운 씨

경주 할머니들의 완소남


경주역 근처 한 조그마한 빵가게. 여자직원 4명과 남자점장 1명이 모여 점심을 먹는다. 한 여자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하는데 닿지 않자, 실장이 얼른 반찬그릇을 그녀 앞으로 옮겨준다. 곧바로 다른 여자들의 견제가 들어온다. "누군 좋~겠네."

점장이 피곤에 지치면, 직원들이 웃음조로 나선다. "저 아가씨 어떻노? 잠이 확 깨제?" "에이~ 별로요! 뭐, 짧은 치마나 뭔가 자극적인 게 있어야 잠이 깨죠." "그럼, 우리라도 화악~ 걷어 올릴까?"



여자 7 대 남자 1. 남자들이여, 이곳이 부럽지 않은가? 경주서라벌찰보리빵 가게에 가면 여자 7명 속에서 알콩달콩 일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이상운 경북경주시니어클럽 점장(32, 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여자들의 나이는 만 64세에서 70세. 할머니들이라 실망하지 말라. 점심 먹고 나면 립스틱 고쳐 바르고, 나이 지긋한 남자손님이 단골 되면 저마다 '나 보러 온다'고 다투는, 천상 여자들이다.



이 점장은 27살 꽃 다운 나이부터 32살까지 5년째 할머니들과 청춘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 31개월 아들도 낳았다. 그는 "정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보통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힘이 없거나 세대 차이가 많이 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니더라고요. 어르신들의 힘이나 센스가 젊은 사람들 못잖아요. 건강에 문제만 없다면요."

이 가게는 찰보리빵만으로 월 1000여만 원이 넘는 매출을 낸다. 그래도 할머니들께 '급여'라고 할 만큼 충분히 챙겨드리긴 어렵다. 친환경찰보리쌀 등 좋은 원료를 쓰고 방부제 등 몸에 해로운 성분은 넣지 않기 때문에 원가가 꽤 높은 탓이다.


이 점장은 "어르신들께 사회 참여 기회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노인일자리 사업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5년 동안 15명의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지금은 7명의 할머니들이 4~5명씩 돌아가면서 주4일제로 일한다.

"어르신들이 만든 빵을 구매하면 그만큼 어르신들에게 일할 기회, 사회 참여 기회가 생깁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전통된장, 떡, 참기름을 만들고 실버택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런 노인일자리가 늘면 더 많은 분들의 노년이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요?"



원래 이 점장은 잘 나가던 애니메이터 출신이다. 대구미래대 애니메이터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한민국신조형미술대전 멀티디자인부분 동상,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 만화영상물 제작지원, SBS방송 애니메이션 ‘유니미니 펫’ 제작 참여 등 프로필도 화려하다. 서라벌찰보리빵 홍보동영상에 들어간 애니메이션은 손수 그렸다.

"솔직히, 그림으로 먹고 살기 힘들 듯해 전망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경주시니어클럽을 알게 됐어요. 일반 직장생활과 뭔가 다를 것 같다는 호기심으로 찰보리빵 사업을 자원했고요. 지금은 잘 선택했다 싶습니다. 삶에 대해 어르신들께 배우는 게 많아요."

그는 "최고로 맛있는 찰보리빵을 만들어 2호, 3호점을 내고 할머니들 급여를 좀 더 챙겨드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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